중환자 병실 침대에 누워 은행으로 실려온 뇌경색 환자... 왜?

- 병원비 마련 위해 정기 예금 해지하러 가족 방문했으나 은행 측 거절
- 은행 측 “긴급한 수술비가 아니라면 본인이 직접 방문해 수령해야”

뇌경색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한 80대 노인이 중환자 병실 침대에 실려 병원을 방문한 일이 벌어졌다. 가족들이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 노인 명의의 예금을 찾으러 갔지만 은행 측이 ‘예금주 본인이 오지 않으면 돈을 찾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사는 80대 노인 A씨의 가족들은 최근 한 시중은행에 예치된 A씨의 예금을 찾기 위해 은행 지점에 문의했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한 A씨의 입원비를 결제하기 위해선 급하게 돈이 필요했고, 회사 퇴직금 중간정산까지 알아보던 중 마침 해당 은행에 A씨의 명의의 정기예금이 만기가 지난 채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A씨 가족은 은행 측에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으나 은행 직원은 내부 규정을 설명하며 “긴급한 수술비에 한해서만 은행이 병원에 직접 이체할 수 있으며, 이외의 경우에는 예금주 본인이 직접 방문해야 돈을 찾을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A씨가 내야 하는 병원비는 500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지만 A씨가 워낙 고령인 탓에 수술을 받을 수 없어 수술비 항목이 포함되지 못해 돈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A씨의 가족은 “당시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콧줄을 단 채로 거동도 못하셨고, 병원 측에서는 아버지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라 외출이 불가능하다고 했다”며 “하지만 은행 직원은 수술비 이외의 병원비는 지급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직접 와야한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결국 A씨는 사설 구급차를 통해 중환자실 침대에 누운 채 은행을 방문해야 했다. A씨 가족은 “본인 명의로 돈이 있는데 자식이 돈이 없으면 병원 진료도 못 받는 것이냐”면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다른 사람들도 분명히 겪을 수 있다. 반드시 고쳐야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은행 관계자는 “정기예금의 경우 예금주 본인 확인을 거쳐야 인출해주는 것이 원칙”이라며 “다만 예금주가 의사능력이 없다는 진단서가 있는 경우 긴급한 수술비에 대해서는 병원 계좌로 직접 이체하는 방식으로 예금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금융감독원의 협조 요청에 따라 마련한 내부규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3자가 예금을 수령할 경우 가족간의 분쟁이 발생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은행 직원이 소송에 휘말린 경우도 있었다”면서 “긴급한 수술비 등의 예외적인 지급은 예금자 보호 차원에서 내부 규정을 부합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금융감독원은 2013년 예금주가 의식불명일 경우 금융회사가 병원비 범위 내에서 병원계좌를 직접 이체 처리하는 제한적인 방법으로 예금 인출이 가능하도록 협조해달라고 금융회사들에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이 예외가 적용되는 대상과 범위, 지급방식과 절차 등은 각 은행들이 내부규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은행마다 다르고, 예금을 맡긴 고객은 이를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A씨의 가족은 A씨가 정기 예금을 보유한 또 다른 은행에서도 인출을 요청했는데, 이 은행의 경우에는 가족관계증명서와 진료비명세서, 의사소견서 등을 확인하고 병원비를 병원계좌에 이체하는 방식으로 A씨의 예금을 인출해줬다고 한다.

A씨는 "충분히 서류상으로 처리할 방법이 있는데 80대 중환자가 예금을 찾기 위해 은행에 반드시 오도록 한 것은 고객의 사정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은행의 갑질, 횡포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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