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구 등 일부 수도권 음식점, 소주 1병 가격으로 6000원 책정
- 제조원가 겨우 550원... 음식점 마진 4520원 수준
- 식재료, 인건비 상승에 이어 전기세 등 공공요금까지 올라 “어쩔 수 없는 선택” 해명도
정부가 최근 6000원까지 치솟은 소주값의 고착화를 막겠다며 주류 제조사들을 상대로 실태조사에 나서자 주류업계가 당혹감을 나타내고 있다. 소주값 인상을 검토하지 않았는데도 정부가 소주 제조사의 수익규모와 경쟁 상황까지 살펴보겠다고 선언한 탓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물가 급등 비판과 소비자 불만을 기업에게 떠넘기려는 속셈이라는 해석도 하고 있다. 주류법상 하이트진로 등 소주 제조사는 소주 유통·판매에 관여하지 못하는 탓이다. 6000원 소주 판매가에서 제조사가 가져가는 돈은 600원 남짓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2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국세청은 주류업계가 소주 가격 인상 움직임에 나섰다고 보고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당장 기재부는 주류 가격 인상 요인과 업계 동향, 시장 구조 등을 파악에 나섰고, 국세청은 주류 업체와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이 같은 행보는 ‘서민 술’ 소주 가격이 6000원이 됐다는 얘기가 돌면서다. 실제 조선비즈가 지난 28일 서울 강남구 일대 음식점 10곳을 조사한 결과 8곳의 소주(참이슬, 처음처럼 등) 판매가가 6000원으로 나타났다. 2곳은 7000원이었다.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 손님이 많아 소줏값이 비교적 저렴한 지역으로 꼽히는 서울시 관악구 식당가는 대부분 소주 가격을 5000원으로 책정한 채였다. 이곳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강모씨는 “작년 초 5000원으로 올렸는데, 이제 6000원으로 올릴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 등 소주 제조사의 소주 가격 인상을 막아 소주 가격 6000원 고착화를 막는다는 방침이다. 주정(酒精·에틸알코올) 가격 인상으로 소주 출고가가 일제히 오른 지난해 초 주점, 음식점의 소주 판매가가 1000원씩 올라간 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다만 업계에서는 정부가 소주 판매 가격의 인상 원인을 잘못 짚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과거 2000원 수준이었던 식당의 소주 한병 가격이 3000원으로 올랐고, 몇 년 전부터 4000원으로, 급기야 6000원 시대까지 온 데는 제조사의 출고가 인상 탓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실제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소주인 하이트진로 참이슬의 공장 출고 가격은 2012년 961.7원에서 지난해 1163.4원으로 10년 동안 200원가량 오른 데 그쳤다. 롯데칠성음료의 처음처럼 공장 출고가 역시 2013년 946원에서 지난해 1162.7원으로 약 217원 올랐다.
반면 식당, 주점의 소주 판매가는 3000원에서 5000∼6000원으로 뛰었다. 특히 소주 출고가가 약 80원 오른 지난해 외식산업연구원이 외식업주 1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5%가 출고가 인상에 맞춰 소주 판매가를 500~1000원 올렸거나 올릴 예정이라고 답했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10년 동안 3차례 인상분을 합쳐도 200원을 조금 넘는 수준인데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소주 가격은 출고가 상승에 비할 바 없이 올랐다”면서 “소주 가격 6000원 논란은 소주 제조사의 문제가 아니라 유통, 판매 가격 상승 탓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강남 지역 일반 음식점의 소주 판매가를 분석한 결과 6000원 소주 한병에서 소주 제조원가는 550원으로 판매가의 9%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남은 5450원은 세금, 운송비에 들었고 또 식당의 운영비가 대부분 비중을 차지했다.
우선 참이슬과 처음처럼은 이른바 희석식 소주로, 순도 99%의 정제 알코올인 주정을 물과 섞어 만든다. 이때 주정은 주정 판매 전담 회사로부터 구매하는데 이 구매 비용과 맛을 내는 감미료, 설비 가동 비용을 포함해 한병에 450원을 쓴다. 이후 병과 포장에 약 100원을 쓴다.
원가 550의 소주에는 곧장 주세와 교육세가 각각 72%, 21.6%씩 더해지는 데 이를 포함한 가격이 제조사의 공장 출고 가격이다. 출고된 소주는 주류법에 따라 제조사가 아닌 주류 유통 면허가 있는 도매사가 부가세 10%가 더해진 가격에 받아 유통하는데, 이때 300원을 붙인다.
550원에 주세와 교육세로 각각 400원, 120원을 더하고, 부가세 110원, 유통비 300원이 붙은 1480원짜리 소주는 식당에서 5000~6000원에 팔린다. 최종 가격 결정을 판매처가 갖는 구조로 편의점은 1480원 소주를 받아 약 500원 마진을 남겨 1950원에 판매한다.
업계에선 소줏값 6000원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닌 가파른 물가 상승의 초상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1480원에 들여온 소주를 6000원에 팔아 4520원을 남기는 음식점의 폭리처럼 보이지만, 식재료, 인건비 여기에 최근엔 전기 요금까지 모두 오른 데 따른 고육지책인 탓이다.
서울 강남구에서 실내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장모씨는 “식자재부터 인건비, 금리, 월세까지 오르지 않은 게 없다”면서 “작년 이미 5000원으로 소주 가격을 올렸고, 이후 음식 가격도 올리고, 배달도 하고 방안을 찾았지만 방법이 없어 또 소주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서울 시내 식당의 소맥(소주+맥주) 판매 가격 1만3000원이 일상이 되는 시기가 올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강남을 포함한 서울 주요 상권이 이미 소주 6000원대에 진입했고, 주점, 식당에서 판매하는 맥주의 가격이 보통 소주보다 1000원가량 비싸기 때문이다.
소주 제조사가 소주 인상 계획은 없다고 밝히고 있는 것과 달리 맥주는 직접적인 출고가 인상 요인도 갖고 있다. 오는 4월부터 맥주에 붙는 세금이 1리터(ℓ)당 885.7원으로 오르기 때문이다. 지난해보다 30.5원 오르는 것으로, 작년 인상 폭(1ℓ당 20.8원)보다도 47%나 큰 폭이다.
한편 소주 제조사는 정부발 소줏값 논란에 “인상 계획이 없다”는 공개 선언까지 하고 나섰다. 하이트진로는 전날 소주 가격 인상 관련 참고자료를 내고 “당분간 소주 가격 인상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롯데칠성음료 측도 “가격 인상 관련 정해진 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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