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으로는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조산사 등 다른 의료인도 보건소장에 임용될 수 있을 전망
- 코로나 장기화로 농어촌 등 의료취약지 건강공백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크게 높아진 상황
보건소장 임용시 의사를 우선하도록 하던 것을 의료인 중에서 임용하도록 개선하는 법 개정이 추진된다. 지역의료 강화, 의사 인력 부족 등이 제기되면서 이에 따라 앞으로는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조산사 등 다른 의료인도 보건소장에 임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 의사만 보건소장 임용이 가능한 현행법
현행법은 의사만 우선 임용하도록 돼있다. 보건소에 의사면허가 있는 보건소장 1명을 두되, 의사면허가 있는 사람을 임용하기 어려울 경우 보건직렬 등 공무원 중 일정 기간 근무 경험이 있는 인원을 보건소장으로 임용할 수 있다.
남 의원은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조산사 등 다른 의료인을 제외하고 의사만을 우선적으로 보건소장에 임용하도록 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이라는 지적이 있어,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하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 열악한 보건소 의료인력 현황
실제 의사인 보건소장을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이는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해 의사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금천구)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의사 면허 보유 보건소장 임용 비율은 2017년 42.5%에서 2020년 41.4%로 소폭 감소했다.
최근 4년간 의사면허를 보유한 전국 보건소장 임용 비율이 40%대에 불과했다. 또 지역별 불균형도 심각해 2020년 기준 대구는 8곳 중 7곳이 의사 보건소장이 맡고 있는 반면, 경북은 25곳 중 4곳에 불과했다.
심지어 충북은 4년 동안 14곳 중 단 한곳도 의사 보건소장이 임용되지 않았고, 최근 경기 양평군은 공석이 된 보건소장 자리를 채우기 위해 올해만 네 번째 채용 공고를 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의사 출신 보건소장의 공백이 이어지자 정부에서는 간호사, 조산사를 대상으로 한 보건진료소장 양성 직무교육을 결정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15일부터 내년 5월까지 약 26주간 보건진료 전담공무원 직무교육에 돌입, 총 142명의 보건진료소장을 양성할 계획이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확산 장기화로 농어촌 등 의료취약지 건강공백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크게 높아진 상황인 만큼 부족한 의사인력 대신 타보건인력의 역량을 높이기로 한 것이다.
◆ 번번히 막혔던 입법
해당 내용의 개정안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6년, 2017년 '해당 규정은 국민의 핵심 기본권인 평등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시정을 권고한 바 있다.
국회에서도 지난 2013년과 2014년 국정감사를 통해 국회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용익 의원과 김미희 의원, 김명연 의원이 보건소장 임용기준을 한의사와 치과의사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복지부에 전달했다.
법제처도 2018년 보건소장 임용자격을 의사면허 소지자로 제한하는 현행 규정은 반드시 정비해야 할 '불합리한 차별규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한의사협회 역시 '지역보건법 상의 보건소장 임용관련 조항' 개정 필요성에 대해 꾸준히 지적해왔다.
한의협은 지난 2013년 '지역보건법 상의 보건소장 임용관련 및 보건소인력배치기준 개정'에 대한 의견을 행정안전부에 건의한 것을 비롯해 공정거래위원회와 보건복지부, 국무총리실 산하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 등에 해당 규정의 개정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번 개정안 발의 소식에도 환영의 뜻을 표하며 '신속한 처리'를 요구했다.
◆ 적극 환영하는 한의사협회
한의협은 "아직도 상당 수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양의사 지원자가 없어 보건소장 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밝히고 "이제는 양방 편중에서 벗어나 한의사와 치과의사, 간호사 등 타 직역 의료인들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공공의료의 편의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의협은 지난 2018년에도 의견을 함께했던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간호사협회 등 타보건의료직역과 함께 이번 법안 통과를 위해 앞장설 계획이다.
◆ 의협의 반응은?
반면, 지금껏 해당 내용의 개정안에 대해 반대해왔던 대한의사협회의 반응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의협은 2018년 법제처의 현행규정에 대한 차별법령 지정 발표에 '유감'을 표현하며 비의사 출신 보건소장 임용 예외조항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을 내보였다.
당시 의협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고 보건소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려면 오히려 현재의 비의사 출신 보건소장 임용의 예외조항을 없애 전문성을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며, "법제처는 규제 철폐라는 교묘한 말장난으로, 척결돼야 할 의료 적폐를 오히려 더 확대시키려는 발상을 하고 있다"고 전달한 바 있다.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와 비슷한 의견을 내비췄다. 그는 "지역사회에서 보건소는 건강증진·질병 예방 등의 업무를 총괄하고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유행 시 예방‧관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 보건소장의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면서 "의사들이 보건소장직을 기피하는 이유는 격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 때문인데 급여 인상, 인센티브 강화 등 되풀이 되는 보건소장 공백 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은 지난 2019년 개정안 발의 때와 달리 정부에서도 사뭇 달라진 입장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의사인력이 부족한 점이 부각되면서 정부 역시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9년 의사 우선 임용기준 개선에 대한 서면질의에서 복지부는 "직능간 갈등 문제가 아닌 직무전문성을 중심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답변한 반면, 이번 2021년 서면질의에서는 "보건소장 임용 시 불합리한 의료인 종별 차등 해소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대답했다.
이어 "현재 보건소 기능 및 조직·인력개편 관련 연구용역을 준비 중으로, 해당 내용을 포함하여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관련 전문가의 의견 수렴을 통해 개정 방향에 대해 결정해 나가겠다"고 전달했다.
<저작권자 ⓒ 의사나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기성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