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를 지키겠다” 젊은 의사들의 다짐에 뭉클한 답글

최근 소청과의사회가 폐과를 선언하는 등 소청과 붕괴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많은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의 걱정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월 서울대 어린이병원 출입구에 게시됐던 실외용 배너 하나가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 출처 : 서울대병원

‘환자와 보호자, 직원들분께 드리는 감사의 글’이란 제목의 긴 글을 실은 배너는 올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14명의 서울대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쓴 것으로, 새내기 ‘의사 선생님’들이 환자인 어린이들에 대해 “어린이들이 가장 큰 선생님이었기에,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전했다.

이들은 글에서 “어린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보호자분과 한마음 한 뜻으로 고민하고, 노력하는 동안 기쁨과 슬픔의 의미도 깊게 배웠다”며 “소아청소년과가 위기라는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지만, 늘 어린이 곁을 지키고 돌보며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배운 것을 나누는 일에도 힘쓸 것”이라고 다짐했다.

새내기 의사들의 진심어린 글에 부모들도 메모지 등을 이용해 댓글을 해당 배너에 붙이며 이들을 응원했다. ‘서울대에서 치료받고 있는 아기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보호자는 의료용 반창고를 통해 붙인 메모지에서 “위기 속에서도 기꺼이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해주시고, 아이들을 성심껏 봐주시는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보통의 사명감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고, 보호자로서 선생님들 노고를 이해하며 치료할 때 성심껏 돕도록 하겠다”고 응원의 글을 남겼다.


▲ 출처 : 서울대병원

이 배너에 적힌 글과 메모지에서 모두 언급되는 ‘위기’란 최근 저출산의 흐름과 현 실상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낮은 의료수가 등으로 고사 위기를 겪고 있는 소아청소년과의 의료현실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실제로 올해 전국의 소아과 수련병원 전공의 모집률은 15.9%로 빅5 병원 중에서도 1차모집 정원을 다 채운 곳은 서울아산병원뿐이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배너 작성자 신백섭 전임의(임강강사)는 “소아과 위기라는 말에 불안감을 느낄 보호자들께 무언가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며 “(장문의 메모 답장은) 전공의 못지 않게 힘들다고 느껴온 전임 생활에 한 줄기 빛이었다”고 말했다.

보호자의 이런 반응에 소아청소년과 교수진도 반응했다. 신충호 소아청소년과 과장은 67명의 소청과 교수진을 대표해 “최선을 다해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게 가정으로 돌려보내겠다”며 “정상을 다해 전공의, 전임의 육성에 힘 쓰겠다”고 다짐했다. 신 교수는 교수진의 이런 다짐에 대해 “어려운 와중에도 열심히 해주는 전공의들에게 감사했고, 또 이런 사정을 알아주는 보호자께도 감사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일엔 최은화 어린이병원장까지 나서 메모지를 남기며 의료진을 독려했다. 최 원장은 “모든 의료진을 대신해 진심을 남긴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항상 연구하고 노력해 ‘최고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남겼다.

최 원장은 “자칫하면 작위적이라는 오해를 받을까 망설여졌다”면서도 “하지만 우리 병원 아이들의 상당수는 다른 병원이 치료하지 못해 오는 중증의 환자이기에, 절박한 심정으로 이 곳을 찾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손글씨로 격려와 감사 인사를 보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신백섭 전임의는 “어린이들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했지만, 사실 우리의 노력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아이들만 생각하고 진료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의사 후배들에겐 “아이 한 명을 살리는 건 아이에게 80년을 선물해주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보람찬 일이니 뜻이 있다면 의지를 갖고 같이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신충호 교수는 “변화에는 동력이 필요한데 분노와 속상함으로 시작해선 잘 바뀌지 않는다”며 “감사의 마음에서 시작해 끝까지 이어진다면 어린이들이 건강한 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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