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증 환자로 가득찬 응급실, 중증환자부터 살릴 수는 없을까

- 환자 중증도 분류 엉망으로 응급실 과밀화... 중증환자 치료 못 받는 현실
- “오는 환자 거부할 수 없는 의료기관에 책임 전가해서는 안 돼... 시스템을 바꿔야”

최근 10대 청소년이 대구에서 추락사고를 당해 위독한 상황을 맞았지만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하고 2시간이 넘도록 도로 위를 맴돌다 사망한 사건을 두고 환자 수용을 거부한 의료기관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사건 당시 A(17)양은 4층 높이의 건물에서 추랑해 우측 발목과 왼쪽 머리에 극심한 부상을 입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사건 당시 의식이 있었고, 그 위중도를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의료기관에는 경증과 중증이 뒤섞여 있는 병실을 무리하게 비워 위독한 환자를 먼저 살릴 수 있는 권한 자체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료계는 해당 사건의 사고자가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한 원인에 대해 최초 환자 분류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위중증 환자는 물론 경증 환자들까지 응급실을 이용하지만 의료기관이 환자의 상태에 따른 진료 거부를 할 권한이 없는 접을 꼽고 있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현장에 도착한 119 구급대로서는 환자를 보고 곧바로 경증과 중증을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구급차 안의 진단기기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손상 기전에 따라 구분하도록 되어 있다”라며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지, 시속 몇 km로 달리던 차에서 사고가 났는지, 무엇에 맞았는지 등을 감안해 대략적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어 초기 정보는 부정확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건 당시 A양의 상태를 육안으로만 보고 구급대가 정확히 뇌손상이라든지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황임을 판단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사건 당시 희미하게 나마 의식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상태를 전달받은 권역외상센터도 처음부터 A양이 위독한 환자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와 소방청, 대한응급의학회와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는 ‘한국형 병원전 중증도 분류 체계 시범사업’을 실시해 병원 전단계에서 환자 위급정도에 따라 1(소생:매우중증)~5등급(비응급:매우경증)으로 분류하도록 했다.

정말 위급한 중증환자가 아니면 제때 병원에서 치료 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증도 분류에 따라 위중한 환자를 먼저 이송하기 위해 마련돼 2022년 2차 시범사업까지 실시됐지만 응급의료 현장에서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의문이다.

해당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사실 4층 높이에서 추락했으면 매우 급한 환자로 취급했어야 했다. 병원도 4층 높이에서 떨어져 뇌손상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매우 중증으로 판단하고 처치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점이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병원 전 환자 이송단계의 첫 단추가 제대로 꿰어지지 않다보니 병원은 정말 위중한 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으로 나타났다.

대한의사협회 김이연 홍보이사는 "응급실 들어오기 전부터 중증도 분류(트리아지, triage)가 안되다 보니 응급실 과밀화가 심각하다. 생명이 오가는 위독한 환자는 장염이나 경증 환자에 앞서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현재 응급실은 선착순으로 운영되고 있다"라며 "의사들이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위해 다른 환자를 안 받을 경우 진료 거부가 될 수도 있고, 그 책임은 의료기관에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경북대병원에 따르면 당시 1개 병상이 비어있었지만 추락 사고 환자가 헬기를 타고 수혈을 한 채 오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곧 도착할 환자가 A양 보다 위중한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권역외상센터는 병원을 향해 달려오는 환자를 외면할 수 없었다.

A양보다 늦게 처치를 받아도 되는 경증 환자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이를 판단하기 어렵고 환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납득시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기 마련이다.

김 홍보이사는 "환자가 발생한 시점부터 중증도에 따라서 환자를 지역 응급의료센터로 보내야 할지, 권역 응급의료센터로 보내야 할지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민간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뒤에 온 환자를 먼저 받아야 해서 먼저 온 환자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중증도 분류, 트리아지 문제는 지난해 이태원 사고 당시에도 불거졌던 문제다. 당시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웠던 순천향대 서울병원이 심정지로 소생이 불가한 환자가 먼저 이송돼 의료 처치로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받지 못한 사례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김 홍보이사는 "이런 상황에서 응급실에 왔으니 일단 병원이 받아야 한다는 식의 사고는 후진적 의료체계다. 이러한 응급상황에서 분류 체계는 공적 개념이기에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며 "의료기관, 의료진 개별 책임으로 몰아세워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 역시 "현재 응급의료센터는 밀려드는 환자로 과밀화 상태다. 중환자와 경증환자가 섞여 있지만 제대로 의료전달체계가 돌아가지 않고 있다"라며 "응급의료는 한정된 의료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느냐의 문제인데 이런 부분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응급실이 과밀화 돼 병실이 없어서, 수술할 사람이 없어서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없다는 대상은 생사 위기에 있는 환자를 살릴 필수의료 자원이다"라며 "코로나 때부터 지속적으로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응급의료체계 개선을 요청해 왔으나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의사나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