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의료경계 허문다... “응급구조학과 정원 자율화”

- 교육부, 응급의료 인력난 해소 위해 정원 자율화... 교육의 질 하락 우려 제기
- 현장실습 어려운 사이버학과까지 허용해 국민 건강 위협될 우려도
- “응급구조는 국민 생명 영역... 직역 이해도 떨어지면 안 돼”

교육부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응급의료 인력 충원을 위해 응급구조학과 정원을 자율화하기로 하면서 의료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무분별한 학과 개설로 인해 응급구조사의 교육 질이 낮아질 우려가 크고, 이에 국민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교육부 대학규제혁신총괄과는 지난 2월 응급구조학과를 자율화학과로 분류해 공포했다. 이에 따라 응급구조학과는 내년부터 학과 개설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워 대학 자율적으로 정원을 설정할 수 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대한응급구조사협회·전국응급구조학과교수협의회는 공동으로 규탄성명을 준비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 차원에서도 이번 조치로 인한 악영향을 추적해 교육부에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의료계는 이런 조치에 대해 응급구조사 과잉 공급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보건사회연구원이 2021년 진행한 ‘의료기사 등 보건의료인력의 중장기 수급 추계 및 적정 수급 방안 연구’에 따르면 응급구조사 인력은 2025년 1957명에서 2030년에는 3998명, 2035년에는 6282명 수준으로 크게 불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이번 학과 개설제한 조치까지 시행될 경우 관련 문제가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응급구조는 국민 생명과도 직결된 직역이기 때문에 관련 인력을 양성할 때에는 교육의 질을 담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오는 2024년부터는 응급구조학과가 난립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기에 비해 교욱의 질과 환경, 관련 실습 장비 등을 구축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현장 실습이 상대적으로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사이버대학에서도 응급구조학과를 개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교육부는 이 역시 학교 자율에 맡기겠다는 방침이여서 반발이 더욱 거세다.

실제 교육부에 사이버대학 응급구조학과 신설에 관해 문의한 내용에 답변사항을 보면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조 등에 근거해 전공 설치 및 교육과 운영에 관련 사항은 학교의 자율”이라고 답변했다.

또, 교육부의 이런 조치는 이해당사자인 응급구조사들과의 소통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어 논란을 일고 있다. 통상 의료계에서는 특정 직역의 질 관리는 해당 직역 교수 단체가 담당하고 있어 교육체계에 변동이 생기는 정책은 시행 전 이들 단체들과 협의를 통해 세부 사항을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응급구조사 질 관리 역시 응급구조학과교수협의회가 담당하고 있지만 자율화학과 전환이 통보식으로 이뤄져 그동안의 노력이 무용지물이 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제로 응급구조학과교수협의회는 2012년 전국 응급구조사 업무를 분석해 교육과정을 표준화하는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이후 2015년부터 전국 응급구조학과 교수 및 대학과의 협의를 통해 해당 교육과정을 적용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인해 이와 무관한 학과들이 무분별하게 대거 양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응급구조학과교수협의회 박시은 회장은 “그동안 응급구조학과 정부로부터 특수성을 인정받아 정원을 통제해왔다”며 “하지만 교육부는 우리에게 어떤 안내나 공지도 없이 일방적으로 자율화학과 전환을 공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무런 통제 없이 자율화로 풀어버리면 민간 차원에서 어떻게 노력해 좋은 교육을 할 수 있겠느냐”며 “응급구조사의 교육 질 하락은 결국 응급환자의 생명에 위협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강경한 투쟁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의사단체에서도 교육부 결정이 응급구조사 직역에 대한 이해 없이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응급구조사가 응급의료체계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전체 계획 안에서 함께 움직여야 한다”며 “인력 정책은 장기적으로 연구해야 하는데도 너무 근시안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교육부는 의료체계 안에 있는 여러 직역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들 직역끼리 무엇을 어디까지 해야하는 사람이고 어떤 기준에 따라 몇 명이 필요한지에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며 “응급구조사들이 먼저 질 관리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이 정책으로 누가 이익을 보는 것인지 짚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와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한 공조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응급구조는 국민 생명에 직결되는 만큼 중대한 문제라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이정근 의협 부회장은 “응급구조는 국민 건강도 아니고 생명을 위한 분야이다. 하지만 관련 교육을 자율화하고 사이버교육까지 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의료 직역 정원에 대한 교육부 간섭이 계속되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직역 문제를 떠나 (응급의학의사회의) 내용 자체가 말이 되기 때문에 공조에 나설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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