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당한 거부 사유’ 구체적인 규정 없어... 정부·의료계·국민 등 사회적 합의 필요
- “수용곤란 고지에도 환자를 받아야만하는 상황, 법적인 보호장치도 필요해”
응급환자 수용곤란 고지 제도가 오는 6월부터 전면 도입되는 가운데 응급의료 현장에서는 의료인이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관련 규정을 개정해 정당한 사유 없이는 응급환자 수용 요청을 거부할 수 없도록 명시했지만 이로 인해 의료 현장 혼란은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론 응급환자를 더 이상 수용할 수 없음에도 관련 규정으로 인해 무리하게 환자를 수용하다 치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소송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수용 곤란을 고지한 의료진이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 상황도 빈번해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 20일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응급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 참석한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새롭게 적용되는 수용곤란 고지 제도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며 이같은 우려를 나타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응급의료기관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환자의 수용요청을 거부하거나 기피할 수 없도록 하는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개정안은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게 되거나 심심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응급환자의 경우 전화, 무선통신 등을 이용해 응급의료기관에 직접 연락해 수용 능력을 확인하고 통보하도록 규정했다.
응급환자 수용곤란은 당일 근무하는 응급의료 책임의사의 판단 하에 전화나 무선통신 등을 이용해 통보한다. 이 때 의사는 응급환자 등의 수용 곤란 사유, 당일 근무하는 응급실 의사와 비상진료체계 당직 전문의 등 현황, 응급의료기관 병상과 시설, 장비 등의 현황을 구체적으로 통보해야만 한다.
인근 모든 응급의료기관에서 수용곤란 상황이 확인됐음에도 심정지 환자 등 중증응급의료환자가 발생할 경우에는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응급환자의 상태와 이송거리 등을 고려해 이송할 응급의료기관을 선정해 응급환자 이송을 통보하고 이송하도록 강제성을 두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전화나 무선통신 등을 이용한 수용곤란 고지는 잘못된 환자분류로 이어질 우려가 있고, 이는 법적 책임만 커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류현욱 교수는 “전화로 직접 연락해 수용능력을 확인하고 통보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전화나 무선통신으로만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한계가 많다는 것을 응급의료 현장에서는 다 알고 있다”며 “중증도를 평가하기 훨씬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제한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수용 통보를 했는데 환자 결과가 좋으면 좋겠지만 결과적으로 경증이었다가 추후 사망하는 등 치료 결과가 좋지 못할 수도 있다”며 “이럴 때 병원에 도덕적 책임을 묻는다면 응급실 의료진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진료에 매진할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또, 정당한 사유에 대한 기준도 모호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시설이나 인력, 장비 역량이 초과되는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수용 거부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보다 세밀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료기관마다 병상 포화도나 중환자실 병상 부족 등 기준이 모두 상이한 상황에서 기준이 너무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류 교수는 “정당한 사유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하다. 응급실 과밀화가 심하거나 병상이 부족할 때, 동시간 대 응급실 의사의 진료 역량이 초과하는 단시간 당 진료량이 과다할 때 등 이야기는 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중앙응급의료센터 홍원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수용곤란의 정당한 사유가 법률적으로 해석되기에 모호한 부분이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응급실을 찾다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한) 대구 사건을 바라보는 응급의학과, 정부, 국민의 목소리가 다른 부분에 대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수용곤란 고지 제도로 의무는 커졌지만 응급실 과밀화의 근본적인 원인인 환자 유입에 대한 조정기전은 전혀 없이 응급의료기관의 책임만 더 커졌다는 우려도 있었다.
류 교수는 “하루에 환자 100명만 봐도 전화 통화는 30통이 넘는다. 상당한 업무량이 요구되지만 응급실 환자 유입에 대한 조정 기전은 전혀 없다”며 “정부는 책임지지 않고 응급환자 수용에 대한 응급의료기관의 책임만 과도하게 커졌다. 밸런스를 맞춰주지 않는다면 응급의학과 과부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유인술 교수도 “수용곤란 고지를 했음에도 환자를 수용했을 때 법적으로 보호해주지 않으면 수용곤란 고지 정책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이 부분에 대해 확실하게 처리해 줄 것을 요구했었다. 수용고지 정책 만들어 놓고 환자들이 떠돌이가 돼 문제라는 게 뉴스에 나오니 응급의학과 의사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거 아니냐고 정부에 물었다. 정부는 객관적 기준을 만들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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