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간호법 거부권 무산 시 민간 구급차 60~70% 멈춘다... 응급실 비상
- 하루 800명 이용하는 민간 구급차 운행에 큰 차질... 의료법 상 업무개시 명령도 안 통한다
간호법 저지를 위해 응급구조사들이 총파업 카드를 꺼내들며 준비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만일 총파업이 진행된다면 응급의료체계의 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가뜩이나 응급의료체계가 붕괴됐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 속에서 환자 이송까지 어려움을 겪을 경우 응급실 현장의 대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4일 대한응급구조사협회는 간호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무산될 경우 오는 17일대대적인 응급구조사 파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3일 이뤄진 13개 단체 보건복지의료연대 1차 부분파업에서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서울과 경기도 지역을 중심으로 50여 대의 민간 구급차가 파업에 동참했었다. 하지만 17일 진행될 총파업에서는 전체 파업 참여율을 60~70%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목표다.
국립중앙의료원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행하고 있는 민간 구급차는 총 1201대이다. 복지부 재난의료과가 분석한 21년 기준 민간구급차 이용건수도 연간 약 30만 건에 달하고 있다.
이를 365일로 나누면 하루 평균 약 800여명의 환자가 민간 구급차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인데, 총파업으로 60~70% 구급차가 운행하지 않을 경우 당일 800여 명에 이르는 환자가 응급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관련 수요가 119 구급대 및 병원 구급차로 몰려 연쇄적인 피해도 예상된다.
보건복지부 업무개시명령도 이들을 복귀시킬 수단이 되지 못한다. 응급구조사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적용받고 있는 만큼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의 근거로 삼게 될 ‘의료법 59조’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의료법 59조는 복지부장관 및 시도지사의 명령으로 보건의료정책을 위하여 필요하거나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경우, 필요한 지도나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의료인과 의료기관은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응급의료체계가 붕괴된 상황에 응급실 과밀화로 인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현 실태에서 환자 전원까지 어려움을 겪을 경우 현장의 대혼란이 예상되고 있다. 더더욱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의료기관이 책임져야할 가능성도 높아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4조 2항에 따르면 의료인은 이송 가능한 의료기관을 확인하고 적절한 이송수단을 알선, 제공할 의무가 존재한다. 만약 응급구조사의 대대적인 총파업으로 이동수단 알선과 제공이 어려워질 경우 관련 책임은 해당 의료기관에 있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민간구급차는 119구급대와 달리 응급환자 이송 외에도 퇴원 후 이송, 거동불편자 보조, 시신 운반 등의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은 만큼 파업으로 인한 피해는 더 클 전망이다. 이송수단이 민간구급차밖에 없는 의료취약지가 수없이 많다는 것도 중대한 문제이다.
응급실 환자 수용 의무를 강조하고 있는 정부의 기조 역시 우려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 등 현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전반적인 인프라 부족과 무분별한 경증환자 수용 때문임에도 정부는 근본적인 개선책 없이 규제만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지부는 지난 3월 대구에서 발생한 10대 여아 추락 사망사고와 관련해서도 수용을 거부한 4개 의료기관을 행정처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소방청·대구시와의 합동조사 및 전문가 회의 결과, 이들 기관은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를 이행하지 않았거나 병상이 있음에도 환자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의료진이 학회·출장 등으로 부재중이었던 상황과 관련해서도 정당한 사유가 없는 응급의료 거부라고 봤다.
현 상황을 감안할 때 응급구조사의 파업이 원인으로 작용해 이송수단을 알선하지 못해서 환자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 책임을 의료기관에 지게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대한응급의학회 이형민 회장은 ”이송 자체는 의료기관 책임이 맞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이송수단도 의료기관이 책임지고 제공하도록 되어있다. 이 때문에 응급구조사 파업으로 문제가 생기면 결국 의료기관에 그 책임이 돌아올 것“이라며 ”더욱이 구급대를 정직원으로 고용하기 어려워 민간업체와 계약해 환자를 이송하는 병원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 큰 문제다“고 우려했다.
이어 ”병원간 이송은 물론 지역간 이송도 불가능해지니 여기서 발생할 문제가 더 큰 문제“라며 ”수도권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지방에서 올라가야 하거나 의료취약지의 경우 사태가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응급구조사협회는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 유감스럽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간호법 제정 시 직역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전했다. 간호법 외에도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에서 간호사 업무범위를 늘리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어 응급구조사들의 위기감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원칙적으로 간호사 업무는 의료기관 내 진료 보조로 국한돼 구급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하지만 의료법에 ‘간호사가 탑승한 경우 응급구조사가 탑승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있어 현재도 업무 범위 침탈이 심각하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간호법이 제정되면 '지역사회' 조항으로 응급구조사들의 일자리가 대거 간호계에 넘어갈 것이라는 우려다.
또 간호계가 간호법 제정 필요성으로 '간호사 업무 범위 명확화'를 강조하는 상황과 관련해, 이미 여러 법안에서 이를 규정하고 있다고 맞섰다.
일례로 간호사 출신 비중이 큰 보건관리사 업무 조항을 보면 '자주 발생하는 가벼운 부상에 대한 치료' '응급처치가 필요한 사람에 대한 처치' '건강진단 결과 발견된 발병자의 요양지도 및 관리' '위 의료행위에 따르는 의약품의 투여'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 법령에서 지역사회에서의 간호사 업무를 규정한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간호법을 제정하려는 것은 간호사의 타 직역 업무범위 침탈을 합법화하려는 시도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응급구조사협회 박시은 부회장은 "간호법은 다른 법안에서 이미 명확화된 업무범위를 무효화하고 이를 포괄적으로 다룬다. 이는 업무 범위를 명확화하는 게 아니라 상위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간호법은 타 직역의 업무를 포식하겠다는 의도가 명확한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더는 간호사들의 불법적인 업무 침탈에 눈감을 수 없다. 대한간호협회 주장은 약소 직역은 소멸할 것이기 때문에 간호사로 대체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며 "지역사회 문구는 이를 합법화하는 것으로, 간호법을 저지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최후의 저항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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