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병원가려면 연차 써야하는 현실... 새벽부터 소아과 ‘오픈런’하는 부모들

- 소아과 진료대란에 부모 발 동동... 의료진 업무부담도 가중
- 높은 업무 강도와 낮은 보상에 “젊은 의사, 아무도 지원 안 한다”
- 소아과 의사들 “거의 유일한 수익원인 진료비, 대폭 상승시켜야”

지난 22일 오전 6시가 조금 넘은 꼭두 새벽부터 A씨는 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한 소아과로 향했다. 이른 아침임에도 이미 건물 앞에는 다양한 나잇대의 남녀 10여명이 긴장된 표정으로 줄을 서고 있었다. 흡사 백화점에서나 볼법한 ‘오픈런’과 다름이 없었다.


▲ 북적이는 소청과 진료 대기실 ㅣ 출처 : 시사IN

10여분이 지나고, 병원 입구에 문이 열리자 이들은 우르르 병원 안으로 몰려들어갔다. 점점 더 몰려드는 사람들에 진료 시작인 9시 무렵이 되자 대기 인원은 80명에 이르렀다. 8시 40분부터 시작되는 대기 접수를 위해 미리 줄을 섰던 남편들이 아이를 안고 온 여성과 교대하기도 했다.

비단 이 병원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같은 시간,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한 소아과 병원에서도 ‘오픈런’은 매일 있는 일이다. 대기하는 사람들은 아예 헤드폰을 끼거나 태블린 PC로 영상을 시청하는 등 기나긴 대기시간을 견디려 각자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아예 캠핑의자를 챙겨와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다. 맨 앞줄에 위치한 사람들은 9시 접수를 위해 새벽 3~4시부터 줄을 섰다고 한다.

7살 자녀와 함께 줄을 서던 A씨는 아예 직장에 연차를 쓰고 소아과를 방문했다. A씨는 “응급실에 가도 소아과 선생님이 없으면 아예 진료를 못본다. 그래서 다들 개인 소아과 병원을 찾게 되는데 의사 수가 너무 적어서 오픈런을 할 수 밖에 없다”며 “애 엄마도 아이에게 감기를 옮아서 내가 연차를 써서 줄을 설 수 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소아과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최근 2-3년간 지속되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방역지침이 완화되면서 야외활등은 늘어 환절기 호흡기 질환과 독감 등 전염성 질병도 유행하면서 소아과를 향하는 환자는 오히려 크게 늘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통계에 따르면 전국 소아청소년과의 수는 2017년 4분기 2229개에서 작년 4분기 2135개로 줄어들었다. 이마저도 60%에 해당하는 1265개는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몰려있다.

젊은 의사들도 소아과를 외면하고 있는 모양새다. 과거 세자리수를 꾸준히 유지하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 수는 3년 전 두 자릿수로 줄어들었고, 올해에는 33명에 불과하다. 가파른 하락세에 수년 내, 빠르면 내년에도 한자릿수로 떨어질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올해 소아청소년과 모집 정원이 있는 50개의 대학병원 중 38개 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가 0명이었다.

젊은 의사들이 소아과를 기피하는 이유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진료 대상인 아이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 속에서 다른 과보다 현저하게 낮은 의료수가, 점점 더 높아지는 소아 진료의 어려움 등이 꼽힌다. 어린이를 돌보는 소아과는 처치와 시술이 거의 없어 진료비가 주된 수익원이지만 지난 30년간 1만 7000원 정도로 정체되어 있다.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5년 의원급 병원 소아과 의사의 연 평균 임금은 1억 6300만 원으로, 조사에 포함된 22개의 의료 과목 중 19번 째였다. 2021년 의원급 전체 과목 총 진료비는 18조 771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2%가 올랐엇지만 소아청소년과 진료비는 5134억 원으로 전년 대비 1.34%가 줄었고, 10년 전(2011년, 6822억 원)과 비교하면 25% 가까이 줄었다.

지난 3월 말 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운영난을 호소하며 집단 폐과 후 미용이나 비만 진료로 바꾸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다음달 11일부터 개설하는 진료과목 전환교육 신청엔 560명 이상이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는 전체 소아과 의사의 10%에 달한다.

한 아동병원에 종사하는 의료진은 “소아과 의사들은 보람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인데 현실은 의료진에 최소한의 인권이나 대가가 보장이 되지 않으니 점차 떠날 수밖에 없다”면서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소아과 의사를 지원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소아 진료 공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31일 중증, 응급, 분만과 소아까지 필수 의료 지원대책을 내놓았다. ▼소아암 진료체계 구축 ▼소아 입원 진료 수가 개선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적자 사후 보상 등이다.

그러나 위기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의사들은 의료수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학과의사회 회장은 “소아과의 인턴이나 레지던트 등 전공의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강화해야 한다”며 ”일본도 소아청소년과전문의들이 지원을 안하는 사태를 겪었는데 아예 인턴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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