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당시 인민군가 만든 정율성 기념사업 논란... 공원·동상·벽화까지 조성

- 광주시 “한·중 우호 위해 공원 조성에 48억 원 투입”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 운동을 펼쳤으나 이후 6·25 전쟁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가와 북한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1914~1976)을 기념하는 공원이 48억 원의 예산으로 조성된다. 광주시는 정율성의 항일 독립 정신을 기리고 한중 관계 돈독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10여 년 전부터 정율성로(路)를 비롯한 기념관과 음악제 등을 계획하고 있다.


▲ 광주에 위치한 정율성 생가 ㅣ 출처 : 조선일보

전남 화순군도 비슷한 사업을 추진중이고, 이미 수십억 원의 예산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는데 단순 좌익 계열의 독립운동가가 아닌 6·25전쟁 때 국군과 맞서 싸운 북한과 중공의 군가를 여럿 작곡한 인물을 세금을 들여 기념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광주시는 동구 볼로동 일대의 878㎡에 정율성 역사 공원을 올해 연말까지 완공하겠다는 목표로 조성 사업을 이미 진행중이다. 정율성의 삶과 음악 세계를 기리겠다며 광장, 정자, 관리 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토지 보상비를 포함해 예산 48억 원이 책정되어 있다. 2019년 사업 계획 당시 책정된 예산은 38억 원이었으나 토지보상 갈등 등으로 일정이 늦어지면서 사업비도 늘어났다.

전남 화순군 역시 2019년 정율성 고향 집을 12억 원을 들여 복원했다. 이 곳에 전시물에는 ‘정율성이 항미원조(抗美援朝) 시절 남긴 사진’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항미원조’란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왔다는 중국식 6·25전쟁 표기법이다. 북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의 본질을 흐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집어 표현하는 것이다.

정율성의 본명은 정부은(鄭富恩)으로 1914년에 광주에서 출생했다. 출생연도가 1918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광주와 화순에서 학교를 다녔고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난징에서 김원봉이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학했다. 율성이라는 이름은 김원봉이 음악으로 성공하라는 뜻으로 지어준 것으로 전해진다.

1939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한 정율성은 중국 시인의 가사를 바탕으로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이 노래는 중공군이 6·25전쟁 내내 국군, 유엔군이 전투를 벌일 때 불렀다. 이후 중국 당국은 곡명을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으로 변경하고 중국군 공식 군가로 사용하고 있다.

정율성은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 보안간부훈련대대(훗날 조선인민군 협주단) 협주단장을 역임하면서 이 시기 북한 애국가를 작사한 월북 시인 박세영의 가사에 곡을 붙여 조선인민군 행진곡도 작곡했다. 중공군과 마찬가지로 6·25전쟁 당시 인민군이 부른 이 노래는 1968년까지 공식 인민군가로 사용됐다. 이 외에도 ‘조선 해방 행진곡’, ‘조국의 아들’, ‘인민공화국의 가치’와 같은 북한군가를 여러곡 지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광주에 조성된 정율성로 등 기념물에는 그의 친북 행적은 소개하지 않고 있다. 광복 전 독립운동을 비롯해 연안송과 같은 중국의 유명한 항일 가곡을 작곡한 이력이 더욱 강조되어 있다. 정율성은 광복 이후에는 중국과 북한을 오가며 활동하다 1956년 북한에서 연안파가 숙청되며 중국으로 귀화했다. 이후 1976년까지 중국인으로 살다가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공묘에 묻혔다. 2009년 신중국 창건 영웅 100인에도 선정되기도 했던 정율성은 북한에서도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가 ‘음악가 정률성’이라는 영화를 1991년 제작하기도 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22일 자신의 SNS를 통해 광주시의 이런 행보를 비판했다. 박 장관은 “정율성이 작곡한 조선인민군가행진가는 6·25 전쟁 내내 북한군 사기를 복돋았다”며 “6·25가 발발하자 전쟁 위문 공연단을 조직해 중국군을 위로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 영웅’ 또는 ‘북한 영웅’인 그를 위한 기념공원이라니, 북한의 열사능이라도 만들겠다는 것인가”라며 사업 철회를 요구했다. 박 장관은 정율성이 김일성으로부터 받은 포상장 사진을 함께 업로드하기도 했다.

최근 중국은 정율성을 한중 우호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중국 시진핑은 2014년 서울대 강연에서 정율성을 김교각, 최치원, 김구 등과 함께 한중 미담 사례로 언급했다. 시진핑도 정율성을 ‘대일 항쟁이 가장 치열할 때 양국은 생사를 함께 했다’며 함께 언급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7년 베이징대 강연에서 “광주시는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한국의 음악가 정율성을 기념하는 정율성로가 있다”며 “지금도 많은 중국인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정율성은 친북행위가 명백하게 드러난 인사인 탓에 독립유공자로 서훈될 수 없는 인물임에도 2018년 노영민 대사의 베이징 주중 한국 대사관은 광복절 경축식에 그의 딸을 초대하기도 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이날 “광주는 정 선생을 영웅시하지도, 폄훼하지도 않는다”며 “광주의 눈에 그는 (정치적 사상을 떠나) 뛰어난 음악가이고, 그의 삶은 시대적 아픔”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그의 업적 덕분에 광주에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찾아온다”며 “그 아픔을 극복해야 광주건 대한민국이건 한단계 성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강 시장은 “정 선생은 시진핑 중국 주석이 한중 우호에 기여한 인물로 김구 선생과 함께 꼽은 인물”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강 시장이 이사장인 광주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정율성 음악 축제 홈페이지엔 정율성의 중공군 위문 등 6·25 관련 행적은 빠져 있다. “13억 중국인의 가슴마다 아로새겨진 작곡가” “중국 3대 음악가 중 1명으로 추앙” 등 표현은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과는 거리가 있다. 광주문화재단은 “2000년 6·15 공동선언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역사적인 첫 만남에 울려 퍼진 곡이 모두 그의 곡”이라고도 했다.

박 장관은 “서재필 박사 등 호남 출신 독립유공자가 2600명이 넘는데 하필 공산당 나팔수 기념 공원을 짓느냐”며 “돈이 되는 일이면 국가 정체성이고 뭐가 필요 없단 말이냐”고 했다. 그는 강 시장이 ‘시대적 아픔’을 언급한 데 대해 “정율성의 군가를 부르며 몰려왔던 적에게 죽임을 당한 수많은 이의 피가 아직 식지 않은 대한민국”이라며 “반국가적 인물을 기념하는 데 국민의 혈세는 손대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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