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가 환자를 위해 내린 선택에 처벌 받아... 외과계 서서히 멸종”

- 지난 10일 2023 대한외과의사회 추계학술대회 개최
- 이세라 외과의사회회장 “미봉책 말고 근본적 해결책 제시해야 할 것”
- 필수의료 저평가 및 저수가 기조의 건강보험제도 전면 개선 강조

최근 환자의 과거 수술 이력과 현재 상태를 고려해 환자의 동의를 얻어 곧바로 수술을 하지 않고 보존치료를 시행한 외과의사가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처럼 악결과를 이유로 형사처벌이나 억대의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 위험 속임에도 이들이 칼을 잡고 수술대에서 환자를 살리고 받는 돈은 고작 몇만, 몇십만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절망적인 상황에 전문의들은 수술을 포기하고 있고, 젊은 의사들은 외과계를 등한시하고 있다.


▲ 출처 : 대한외과의사회

지난 10일 서울 용산에 위치한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대한외과의사회 추계학술대회 기자 간담회에서 이세라 회장이 위와 같이 설명하며 외과계의 비참한 현실을 토로했다. 이 회장은 이런 상황만 해결할 수만 있다면 의료계가 그토록 반대하는 의과대학 정원 증원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개선 없이 위기를 그 순간에만 회피하려는 ‘떡밥’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도 경고했다.

이 회장은 “교수가 당직에 지치고 정년으로 물러나도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의가 환자를 위해 내린 선택 때문에 처벌을 받았다. 갖가지 이유로 의사에게 배상을 요구하고 형사 처벌을 내린다. 젊은 의사가 더 이상 외과계에 종사하지 않으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맹장 수술만 하더라도 홍콩은 2,000만 원, 미국은 7,000만 원 수준이다. 한국은 전세계에서 최하위다. 이러니 외과의사가 계속 줄어드는 것이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다고 하더라도 수술을 하지는 않는다”며 “이런 상황은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고 통계로도 집계하기 어렵다. 결국 외과계가 서서히 멸종하고 있는 것”이라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입원전담전문의는 해결책이 아니다. 전문의를 더 채용해도 (병원 경영에) 무리가 없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하는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공공임상교수제도 실패했다”며 “정부가 편법만 계속해서 동원하니 더는 젊은 의사들이 미끼를 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이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건강보험제도를 전면 개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40년 넘게 외과계를 저평가하고, 저수가에 묶어 이를 당연하게 여긴 탓에 필수의료 종사자가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낸 셈이라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맹장 수술을 받지 못하면 환자는 죽는다. (수술료는) 목숨값인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9만 원인 맹장 수술 수가를 10배 올리자고 하면 동의하는 이가 많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면서 (미용 시술인) 쌍꺼풀 수술 100만 원, 200만 원 하는 것은 국민은 물론 언론조차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다른 분야보다 차별받는 것으로 느껴지는 필수의료 종사자들이 계속해서 방치되면 백약이 무효하다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와 정치권이 추진하고 있는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신설도 ‘근본적 원인은 회피’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제도 개선이라는) 조건부가 있다면 의대 정원 증원도 찬성한다. 그러나 지금 상태 그대로라면 증원하더라도 필수의료 지원자는 없을 것”이라며 “필수의료를 하면 감옥에 가거나 돈을 물어줘야하는 시대다. 가르쳐줘도 못 배우고 배우는 척만 하며 (필수의료 진료는) 안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 40년간 미봉책으로 누더기가 된 제도를 뜯어 고쳐야 한다. 깨진 항아리를 본드로 붙여놓고 물을 담으라고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더 이상 회피해서 될 일이 아니다.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필수의료 기피현상을) 의사들의 이기심으로만 돌리지 말고 정책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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