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병원서 자살 시도로 사망한 환자, 병원에도 책임 50% 있다”

- 춘천지법, 자살 시도해 사망한 환자에 공단 청구 구상금 3000만 원 지불 판결
- 간호관찰기록 저녁 6시 이후 기재 안 되는 등 환자 격리 및 관리 미흡 인정
- 법원 “환자 본인 책임 가장 크지만 관리 소홀한 병원 측도 책임”

정신병원에 입원해있던 환자가 자살시도를 한 뒤 2년여 간 치료를 받다 결국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법원이 병원 측에도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책임 수준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청구한 구상금의 50%로 제한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춘천지방법원은 A의료법인과 국민건강보험공단 간의 구상금 청구와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A의료법인의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다만 A 의료법인에도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며 공단이 청구한 구상금 6102만 7110원 중 절반인 3051만 3555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도록 했다.

환자 B씨는 지난 2020년 8월 조현병으로 C정신병원에 비자의 입원했다. 당시 의료진은 코로나19 감염을 막고자 정부 지침에 따라 B씨를 입원시킨 후 14일간 1인실에 격리 조치를 시행했다. B씨는 격리 7일차만에 병실 쇠창살에 수건을 둘러 자살을 시도했다.

B씨는 간호사에게 즉시 발견돼 심폐소생술 후 D병원으로 긴급 전원됐으나 무산소성 뇌손상으로 의식 불명에 빠졌고, 이후 E병원으로 다시 옮겨져 입원치료를 받다가 지난 2022년 4월 결국 사망했다.

공단은 B씨가 치료 받은 병원 2곳(D,E)에 총 6102만 7110원의 요양급여비용을 지금했음으로 국민건강보험법 제 58조에 의거, A의료법인이 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C정신병원 의료진이 ‘B씨의 자살 위험을 오판해 환자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A의료법인은 의료진 과실이 없다며 손해 배상을 거부했다. 조현병 환자인 B씨는 자살 고위험군이 아니었고, 갑작스러운 자살 시도로 인한 사망을 예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1심 재판서 진행한 진료기록 감정에 따르면 C정신병원 의료진은 B씨의 자살 위험도를 ‘거의 없음’이라고 평가했다. B씨는 입원 당시 자살한 시도 전력은 없었지만 심한 정신병적 증상과 흥분, 초조, 행동 문제를 보였다. B씨 배우자는 상병발생원인 확인서에서 B씨가 입원 후에도 계속 내보내달라며 간호사에게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겠다고 호소했으나 무시당한 사실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측은 “의료진의 자살 위험도 평가는 부적절하지만 흥분이나 입실 거부가 곧 자살 징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B씨가 자살 위험도가 높은 환자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중재원은 “조현병 약물 치료가 적절히 이뤄졌고, 의료진이 투여한 향정신성 약물 등으로 자살 위험이 증가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조현병 환자는 급성 정신병적 증상이나 우울증을 보이거나 병원 퇴원 이후 수개월 내 자살 위험성이 높다”고 했다.

그러나 환자를 격리하고 관찰하는 과정에서 미흡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간호관찰기록은 오후 6시 이후에는 기록되지 않았으며 의사가 격리를 지시한 후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에게 감시를 위해 특별히 지시한 내역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문제 삼았다.

또, C정신병원의 격리실이 자살 시도를 사전에 예방하기에는 취약한 구조인 점도 지적했다. 배우자의 기술처럼 B씨가 실제로 격리실을 나가게 해달라며 뛰어내리겠다고 여러차례 언급했다면 이를 자살 시도 징후로 볼 수 있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이에 2심 재판부는 C정신병원 의료진이 보호 및 감시 의무를 소홀히 해 B씨가 자살 시도 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며 공단의 손해배상 청구권 대위 행사가 가능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입원 당시 B씨가 이미 중증 조현병 증상을 보여 어느 정도 자살 위험성이 있는데도 의료진은 자살 시도 전력이 없다는 이유로 자살 위험도가 ‘거의 없음’이라고 단정했다. 주치의는 ‘낮음’으로 평가했으나 과실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입원 직후 B씨는 배우자에게 속아 입원했다며 흥분해 입실을 거부했다. C병원 간호관찰기록이 부실하므로 여기에 관련 기록이 없다고 해서 B씨가 ‘뛰어내리겠다고 말했다’는 배우자의 기술이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B씨가 여러 차례 뛰어내리겠다고 호소할 정도로 자살 징후를 보였는데도 의료진은 이를 무시하고 구체적인 자살 예방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B씨의 자살 시도를 막지 못했고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의료진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의료진 책임 비율은 50%로 제한했다.

재판부는 "자살 시도에 대한 책임은 본인(B씨)이 가장 크다. 그러나 B씨는 통상적인 질병이 아닌 정신질환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진의 전문적인 진료와 간호를 받기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며 "B씨는 자살 위험이 일반 환자보다 높았다. 의학적·사회적으로 정신병원은 입원 환자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높은 주의를 기울일 것으로 기대된다. 의료진 책임이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

이에 따라 재판부는 A의료법인에 공단이 요구한 구상금 중 50%와 지연 이자를 지급하도록 하고 나머지 양측 청구는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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