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료계가 겪고 있는 혼란은 단순히 병원과 환자들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의료기기 업계 또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으며, 이 문제의 중심에는 의대 증원 반대로 인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움직임이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의료 공백이 한 달을 넘기며, 의료기기 공급 체계에도 예상치 못한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병원과 의료기기 업체 사이에서 중개 역할을 하는 간접납품회사(이하 간납사)들이 의료 공백의 장기화를 이유로 의료기기 대금 결제 기한을 늘리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의료기기 업계의 자금 순환에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병원과 간납업체가 일방적으로 대금 결제 기한을 연장하는 상황에 대해 큰 우려를 표명했다.

서울대학교병원 계열의 간납업체인 이지메디컴은 최근 대금 지급 시기를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변경한 바 있으며, 이러한 조치는 서울대병원 및 분당서울대병원 등의 의료기기 업체들에 큰 충격을 주었다. 또한, 성모병원 계열의 오페라살루따리스도 의료기기 업체들에게 결제 지연 가능성을 통보함으로써 이 문제가 점차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간납사는 병원의 구매업무를 대행하며 일종의 '통행세'를 징수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병원에 납품되는 의료기기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가지고 있으나, 최근 의료 대란이 가시화하면서 간납사들이 결제 대금 기한을 일방적으로 늦추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의료기기 업체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으나, 지속적인 제품 공급 계약 유지를 위해 이러한 상황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의료 공백 장기화로 인한 진료 및 수술 축소로 매출이 50~70% 감소하며, 일부 의료기기 업체들은 줄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 더욱이 의료기관의 연속된 대금결제기한 연장이 의료기관의 부도로 이어지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어, 이러한 상황이 업체들에게 긴 소송 등의 힘겨운 싸움을 강요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간납업체의 불공정행위를 조사하고 규제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 중이나, 현장에서의 변화는 아직 미미하다. 의료기기산업협회는 간납사의 일방적인 대금결제 지연과 불공정거래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한, 의료기기 업체들의 피해가 계속 증가할 것이며, 이는 결국 국민 건강 위협과 치료비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업계 내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의 해결이 요구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