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증원, 교육 현실과의 괴리
의학교육점검반의 형식적 운영과 그 한계
급격한 정원 증가로 인한 의학교육 질 저하 우려
최근 정부가 의대별로 배정한 정원 증원 규모가 교육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일부 의대에서는 수용 가능한 인원을 최대 141명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의학교육점검반을 구성해 대학별 의대 교육 여건을 확인한 후 정원을 배정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대한의학회, 한국보건정보통계학회는 정부가 법원에 제출한 의대 정원 증원 근거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13일 공개하며 이러한 사실을 밝혔다. 이들은 분석 결과를 검증보고서 형태로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항고심 심리 중인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했다.
이번 조사는 2025학년도 입학정원이 10% 증원된 30개 의대를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10% 미만 증원된 인제의대와 순천향의대는 제외되었다. 조사 결과, 30개 의대 중 28개 의대가 수용 가능 인원을 평균 53명 초과한 정원을 배정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큰 문제는 충북의대에서 발생했다. 충북의대는 기존 49명에서 10명 증가한 59명까지 수용 가능했으나, 정부는 이 의대에 200명을 배정해 141명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충북의대 정원이 기존보다 4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또한, 경상국립의대는 현재 정원 76명보다 4명 많은 80명까지 수용 가능하다고 조사되었으나, 정부는 200명을 배정했다. 충남의대 역시 현 정원 110명보다 11명 많은 121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이지만, 정부는 79명 초과한 200명을 배정했다.
반면, 연세원주의대는 현재 정원 93명에서 27명 증가한 120명까지 수용 가능했으나, 교육부는 7명 증원해 100명만 배정했다. 대구가톨릭의대는 현 정원 40명에서 내부 수용 가능한 인원 80명 그대로 배정받았다.
전의교협과 학회는 “의대 교수들이 각 대학에서 수용 가능한 학생 인원을 조사한 결과, 교육부 배정 정원과의 격차가 평균 53명으로 상당했다”며 “정부가 말한 세 단계 의학교육 점검 결과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학교육점검반의 운영도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는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서 “각 대학 수요조사의 타당성 검토를 위해” 의학교육점검반을 구성해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두 달간 의대 교육 여건을 서면, 비대면, 현장 점검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장 점검을 실시한 의대는 총 14곳에 불과했다. 정부는 이 과정을 통해 “의대가 상당한 수준의 증원 역량이 있다고 판단해 대학이 제출한 2025학년도 최소 수요(2,151명) 범위 내에서 2,000명 증원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의교협과 학회는 점검 방식의 문제를 지적하며, “비대면 점검 회의로는 의학교육 실태를 파악할 수 없으며, 대학 1곳당 20~30분만 형식적으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의대 39곳에 대한 비대면 점검이 3일 만에 모두 완료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부산의대와 전북의대는 서류 검토와 비대면 점검만 받은 후 신청한 정원보다 많은 정원을 배정받았다. 부산의대는 25명 증원을 신청했으나, 정부는 3배인 75명을 증원해 “실제 교육이 불가능한 사태를 초래했다”고 교수들은 주장했다. 전북의대는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정원을 142명에서 160명으로 증원할 계획이었지만, 정부는 2025학년도 정원을 58명 증원해 200명으로 배정했다.
현장 점검도 형식적이었다. “3시간 동안 현장 점검을 한 대학은 단 한 곳으로, 전문가는 0명이었고 복지부 실무자인 직원 1명이 실사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나머지 대학들은 1~2시간 만에 점검이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대학별 현장 점검 결과를 담은 보고서도 없었다.
이들은 “지금도 부족한 교수 인력이 갑자기 늘어날 수 없다”며 “의대 교육과정은 일반 대학 수업 또는 평가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기에 갑작스러운 정원 변경은 교육의 질을 현저히 저하시킨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강행할 경우,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이 실시하는 의학교육인증평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폐과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5학년도 정원이 10% 이상 늘어나는 의대 30곳 모두 현재 교육 여건으로는 의평원 인증평가를 탈락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이번 조사 결과와 비판은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정부의 접근 방식에 대한 심각한 재검토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교수들과 학회는 정부가 보다 현실적이고 철저한 검증을 통해 교육 여건에 맞는 정원 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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