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수익 감소에 허리띠 졸라매는 병원들…“버텨야 살아남는다”

비상경영체제 돌입, 인건비 절감과 지출 최소화
의료기기 업체와 제약사에 대한 대금 지급 연기
연구비 지원 축소와 학회 참석 보조금 제한 확대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100일을 넘어서면서 병원들이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3개월 동안 대규모 적자가 지속되자 병원들은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하여 최대한 지출을 줄이며 버티고 있지만, 상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병원들은 입원환자와 수술환자 감소로 인해 의료수익이 몇 달째 급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병원들은 지출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긴축 조치를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직원들의 무급 휴가 기간을 연장하여 인건비를 줄이고 있으며, 의료기기 업체와 제약사에 지불해야 할 대금 지급 시기를 연기하고 있다.

경영난 앞에 '빅5병원'도 예외는 아니다. 세브란스병원은 일반직 대상 안식휴가(무급휴가) 부여일수를 기존 20일에서 40일로 확대했다. 서울아산병원은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달 중순까지 희망퇴직 신청도 받았다.

빅5병원 외의 병원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경희의료원은 무급휴가를 시행하고 있으며, 보직 수당과 교원 성과급 지급을 유예하고 있다. 한양대병원 역시 기본급 외의 보직 수당 지급을 중단했다.

서울과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 병원들도 경영난을 겪고 있다. 경북대병원은 지난 28일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비용 절감에 나섰다. 경북대병원은 꼭 필요하지 않은 사업에 예산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여 버티겠다는 방침이다.

의료기기 업체와 제약사에 지불할 대금 지급 시기도 기약 없이 밀리고 있다. 빅5병원 중 한 곳인 A대학병원 관계자는 “병원들이 의료기기 업체나 제약사의 경우 제품 선 공급 후 정산이 일반적인데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병원조차 매월 말 정산을 2개월 후로 미뤘다”며 “한양대병원도 1년 후로 연기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의료기기 업체들도 매출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는 소식이 들린다”며 “의대 정원 증원으로 인한 여파가 의료산업 곳곳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병원들의 경영난은 의학 연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병원들이 연구비 지원과 학술 연구를 위한 학회나 세미나 참석 보조금도 제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세의료원은 지난 23일 소속 교수들에게 ‘2023년 논문업적수당’ 지급을 보류한다고 안내했다.

이에 대해 서울의대 교수협의회장인 김종일 교수는 “서울대병원이나 의대 차원에서 연구비 지원 축소 사례는 아직 없지만, 병원에서 교수의 학회나 세미나 참석 보조 금액에 제한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지금 가시적인 피해는 없더라도 사태가 장기화되면 의대 연구 환경도 악화될 수 있다. 병원에서 들어오는 연구 재정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한양대병원 B교수는 “5월 중에는 의정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버텨왔지만, 교수들도 지쳐가고 있다”며 “조만간 도산을 우려해야 하는 병원이 나올 수도 있다. 어떻게든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막대한 인건비 때문에 차라리 병원을 닫는 게 낫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병원 경영진에게 큰 압박을 주고 있으며, 이들은 비용 절감 외에는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병원들이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와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의료계 전반에 걸친 심각한 위기가 초래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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