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수도권 집중, 지역 상급종합병원 인력난 심화
전문의 이동, 지방 종합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확대
정부 의료개혁, 지방 의료 약화로 역효과 우려
정부가 지역 의료의 활성화를 목표로 추진한 의료개혁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는 모습이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이어지면서 의료계와 정부 간의 갈등이 깊어졌고, 그 사이 지방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이탈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을 중증질환 치료에 집중하는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은 지방 상급종합병원에서 전문의 인력 확보조차 어려워 보인다. 이는 최근 발표된 의료기관 종별 전문의 현황 통계에도 명확히 드러난다.
전문의 인력 수도권 쏠림…부산 제외한 지방 병원에서 감소세 두드러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지역·종별 전문의 인력 현황'에 따르면, 2024년 2분기 전국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병원, 의원에서 근무하는 전문의 수는 총 9만919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6% 증가했다. 그러나 이들 중 수도권 의료기관에 소속된 전문의 수는 5만1,625명으로 전체의 56.78%를 차지하며, 전년 동기 대비 0.38% 증가했다.
특히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에 전문의 인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수는 9,386명으로 전체 상급종합병원 전문의 수(1만4,526명)의 64.61%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서울의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전문의 수는 6,655명으로, 수도권 전문의의 70.90%에 달했다.
반면 지방의 상황은 수도권과 크게 달랐다. 부산을 제외한 모든 지방 상급종합병원에서 전문의 수가 감소했다. 부산 지역의 상급종합병원 전문의 수는 887명으로 전년 대비 22.34% 늘어났으나, 다른 지역은 반대의 상황이었다. 가장 큰 폭의 감소를 보인 지역은 전남으로, 지난해 165명에서 올해 151명으로 8.48% 줄었다. 강원도와 충북, 전북 등 다수의 지방에서도 전문의 수 감소가 이어졌다.
이러한 전문의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정부가 추진해온 의료개혁이 지방 의료계의 실질적인 인력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수도권의 대형병원으로 전문의 인력이 쏠리면서 지방의료는 점차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간의 전문의 이동…지방 병원, 인력난 심화
이번 분석에서 나타난 또 하나의 특징은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병원 간의 전문의 이동이다. 상급종합병원에서 빠져나간 전문의들은 대부분 종합병원이나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는 지방 의료기관의 인력난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대전 지역에서는 건양대병원이 상급종합병원으로 승격된 반면 충남 소재 순천향대천안병원이 상급종합병원에서 탈락하면서 지역 내 전문의 수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건양대병원이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전문의 수는 전년 대비 60.71% 증가한 450명이 되었으나, 순천향대천안병원이 종합병원으로 변경됨에 따라 충남 지역의 상급종합병원 전문의 수는 4.23% 감소했다.
반대로 상급종합병원 전문의 수가 감소한 지역에서는 종합병원과 병원의 전문의 수가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인천 지역에서는 상급종합병원 전문의 수가 감소한 반면 종합병원과 병원에서 각각 6.63%, 4.05%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는 전문의들이 상급종합병원을 떠나 종합병원과 같은 상대적으로 덜 부담스러운 의료기관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동이 지방 의료의 전반적인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떠난 전문의들이 종합병원이나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이동하면서, 지방의 중증질환 치료 역량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증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려워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지역 간 의료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지방 대학병원들 점점 말라가고 있다"…전문의 이탈과 의료현장의 현실
전북에 위치한 한 상급종합병원 정형외과 교수 A씨는 전문의 인력의 이탈로 인해 "지방 대학병원들이 점점 말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도 최근 순환기내과, 내분비내과, 소화기내과, 정형외과 등의 교수들이 연이어 사직했으며, 추가로 사직을 준비 중인 교수들도 많다고 전했다.
A교수는 "교수들이 조용히 다른 직장을 알아본 후 천천히 떠나는 상황이다. 현재도 문제지만 연말 이후에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지방 대학병원의 인력난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또한 지방 상급종합병원이 수도권 병원과 동일한 진료비로는 경쟁할 수 없으며, 지방에서는 수도권만큼의 환자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연봉을 무작정 높일 수도 없는 현실을 설명했다.
전문의들이 지방을 떠나 수도권으로 몰리는 상황은 정부가 추진하는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정책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지방에서는 중증질환 치료를 위해 상급종합병원이 필수적이지만, 전문의 인력이 부족하면 이런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지방 상급종합병원의 인력 부족은 결국 지역 주민들의 의료 접근성을 저하시킬 수밖에 없다.
"모든 타깃은 빅5병원"…지방 병원의 역할 약화 우려
강원 지역의 C상급종합병원 D교수는 "전공의들이 떠나면서 남아 있는 교수들이 모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번아웃이 올 수밖에 없다"며, 지방 상급종합병원의 열악한 근무 여건을 토로했다. 그는 정부의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정책이 결국 수도권의 대형병원, 이른바 '빅5병원'을 위한 정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D교수는 "빅5병원이 전문의 인력을 모집하면 결국 지방에서 번아웃된 전문의들이 이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옮기게 되는 것"이라며, 지방 인력들이 수도권으로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정부가 지방의료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연구와 교육도 완전히 멈췄다"며, "진료만으로도 바쁜 상황에서 연구를 할 여유가 없고, 가르칠 전공의도 없다"고 말했다. D교수는 전문의들의 자존감과 자존심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며, 지방 병원에서 전문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고 했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해 중증질환 치료에 집중하도록 하는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지방의료는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 전문의 인력은 수도권으로 집중되고, 지방의 상급종합병원들은 인력 부족으로 중증환자 치료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저작권자 ⓒ 의사나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하준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