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 처단' 대혼란의 시대…같이 가야 하는 이유

"의료인 복귀 명령, 강제 노동은 있을 수 없는 일"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심각한 갈림길'
원칙을 지키는 의료계, 강경한 전략으로 대응해야

의협 비대위가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직후 발표된 포고령에 '복귀 명령 불응 의료인 처단'을 명시한 책임자 규명과 윤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가운데, 주수호 후보는 참담한 심정으로  대혼란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같이 가야만 하는 이유와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의료인 처단' 대혼란의 시대…같이 가야 하는 이유

이번 계엄 과정을 지켜보던 의사들은 정부의 현실 인식 수준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계엄사령관 명의로 발표한 포고령에는 다음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현재 파업 중인 전공의나 의사가 단 한 명도 없는데도 계엄사령관은 의료현장 이탈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통해 사직한 전공의들을 강제로 수련병원으로 돌려보내려 시도했다. 하지만 아무리 계엄 상황이라 해도 강제 노동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미 절반 이상의 사직 전공의들이 일반의로서 타 의료기관에 취직해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적 계약까지 무시하는 문구였다.

이처럼 황당하고 폭압적인 내용이 계엄 포고문의 한 대목을 버젓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정부가 작금의 의료 사태를 어떻게 대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계엄 담화문에서 밝힌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 가운데 하나로 의료인을 지목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의료인들이 왜 강경투쟁에 나섰는지 정부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파악하려 들지도 않는다는 것을 한밤의 계엄 사태를 통해 명백히 확인했다.

대한민국의 의료제도는 현재 심각한 갈림길에 섰다. 의료인들이 현장에서 증언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의료체계는 의사들을 불합리한 구조 속에 가두고, 그 결과 국민과 의사 모두가 불행한 현실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의사들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현 체제에 순응하며 하루하루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국민과 의사 모두가 행복한 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과감히 한 걸음 내디딜 것인가. 이 선택의 순간에서 의사들의 미래가 우리 의사들의 손에 달려 있다.

최근 들어 의사 사회 내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언론보도가 부쩍 증가했다. 이는 의대 정원 확대와 같은 정책에 대응하는 의료계 단합을 저해하려는 외부의 시도라 볼 수 있다. 이 같은 갈등 조장 움직임을 의사들은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내부의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하나의 팀이 되어 같이 가는 것이다.

며칠 전 서울 여의도에서 사직 전공의를 우연히 만났다. 생계 때문에 발렛파킹 일을 하면서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의사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하는 그의 모습에서 비참한 의료계 현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나 그와의 만남은 또 다른 희망을 일깨웠다. 우리가 서로에게 격려를 보내고 힘을 모은다면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2025년 의대 정원 확대는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근본을 뒤흔들 위협이다. 정부는 의료 사태를 초래한 책임자로서 반드시 해법을 제시해야 하지만, 국민들의 시선이 비상계엄 정국으로 분산된 이때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의료 재앙을 얼렁뚱땅 맞이할 위기에 직면했다.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도 지금 국민들의 관심은 의대 정원 이슈에서 벗어나 있다.

차기 대한의사협회(의협) 집행부는 이 같은 상황을 정확히 직시하고 활동 방향을 정해야 한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이 정책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냉소는 현 시국에서 부적절하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멈추는 결단을 내리게 하는 게 중요하다.

어느 기자는 나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 '초강경파'로 알고 있었다며 오해가 있었다고 했다. 이렇듯 원칙을 지키는 게 '강경'으로 간주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원칙이라는 건 의료계가 사수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과 가치가 무너지려 한다면 강경하게 목소리를 내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의료계의 가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명확한 목표와 강경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요양기관 강제지정제 폐지 및 단체계약제 도입'과 같은 요구는 상대방이 수용하기 힘든 안건이라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협상은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힘든 안건을 테이블에 올리고, 이를 통해 협상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보신주의에 머물러서는 결코 미래를 바꿀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 의료제도는 필수의료 진료만으로 의료기관 운영을 유지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뿌리 깊게 안고 있다. 저수가 정책과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는 의료기관의 박리다매 운영을 유발, 큰 도시 번화가의 건물주만 혜택을 보는 왜곡된 시장을 초래했다. 이는 필수 의료를 지속 불가능하게 만들고 국민과 의사 모두를 불행에 빠뜨리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이 단순할 순 없겠지만,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를 폐지하고 국민건강보험과 경쟁이 가능한 다양한 형태의 민간보험을 도입하는 게 근본해결책 중 하나일 수 있다. 나아가 의료진의 전문성과 헌신을 존중하고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우리 의료제도는 전환돼야 한다.

우리의 선택이 대한민국 의료계와 국민의 미래를 결정한다. 분열과 갈등이 아닌, 하나의 대오로 같이 나아가야 한다. 같이 가야만 멀리 갈 수 있다. 의료인이 반국가 세력으로 매도되는 시대에 우리가 이해하고 우리가 협력해야만 대한민국 의료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이 중요한 순간에 행동하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미래의료포럼 대표 주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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