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암환자 조직검사 미실시 이유로 삭감한 처분 취소
"심평원 내부 행정규칙은 절대 기준 아냐" 의료진 판단 존중해야
"엄격한 적용, 의료행위 위축 우려" 지적…의료계 환영 분위기
의료진이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내부 행정규칙을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요양급여비용을 삭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는 최근 A 병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용 감액조정처분 취소소송에서 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사건의 발단은 A 병원이 지난 2020년 9월부터 2021년 7월까지 췌장암 환자 B씨에게 14차례에 걸쳐 FOLFIRINOX 항암요법을 실시한 후 심평원에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면서 시작됐다.
심평원은 병원이 조직검사를 하지 않고 CT 검사와 종양표지자 수치만으로 암 진단을 내렸다는 이유로 약 1,183만 원을 삭감했다.
심평원은 "조직학적 검사로 암을 확진해야 한다"는 '암환자 약제 요양급여 적용기준' 공고의 일반원칙을 근거로 삭감 결정을 내렸고, 병원 측이 이에 불복해 제기한 심판청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병원은 "환자가 조직검사를 받을 수 없는 상태였으며, CT 검사와 종양표지자 수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이성 췌장암으로 정확히 진단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치료 이후 실제 환자의 종양 크기와 종양표지자 수치가 크게 개선됐고, 이후 조직검사로 뼈 전이도 확인했다"며 적절한 진료였음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병원의 주장을 받아들여 심평원의 감액조정처분을 전면 취소했다.
재판부는 "심평원의 공고는 내부 업무처리를 위한 행정규칙에 불과하며, 절대적 기준으로 볼 수 없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또한 "해당 공고의 일반원칙 역시 조직학적 검사를 절대적인 필수 요건으로 설정한 것이 아니며, 예외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법원은 "의료진은 환자의 건강 상태, 의료 환경, 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상당한 재량을 가지고 치료 방법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의료진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직검사를 시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확히 암을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를 했다면, 의료진의 결정은 의학적으로 최적의 방법이었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또한 심평원의 주장에 대해 "일반원칙을 지나치게 경직되게 해석하면 의료행위를 위축시키고 국민건강보험의 본래 취지인 국민 건강 증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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