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선결조건은?...의료법 제34조 삭제해야

- 모호한 내용으로 문제를 유발하고 있는 의료법 34조를 삭제해야
- 의료법 제34조가 원격의료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이 아니라 오히려 원격의료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신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하자, 그동안 무조건적인 반대만을 외치던 의료계 내에서도 ‘원격의료'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열린 의료계 월례학술회에서는 원격의료를 규정하고 있는 법 조항이 오히려 환자와 의사 사이의 원격의료를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원격의료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해당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 것이다.



지난 19일 대한의료법학회 월례학술회에서 참석한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는 '원격의료의 법적 규제와 문제'를 주제로 발표하면서 '원격의에 대한 끝없는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선 모호한 내용으로 문제를 유발하고 있는 의료법 34조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원격의료 관련 법규정은?
최근 원격의료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때마다 중요하게 언급되는 관련 법 규정은 의료법 제17조와 제17조 2의 '직접 진찰' 규정과 제34조 '원격의료' 규정이다. 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신설된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9조 3에서는 의료인과 환자 간 비대면진료를 허용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한시적'이라는 조건이 붙고 있다.

의료법 제17조 및 17조의 2는 의료인이 환자를 '직접 진찰'한 후 진단서, 증명서, 처방전 등을 작성, 교부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의료법 34조는 말 그대로 원격의료에 관한 규정으로 의사와 의사의 의견 교환만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원격의료와 관련한 소송에선 주로 의사가 '전화'로 환자를 진찰한 후 처방전을 발행한 게 문제시 되어왔다. 즉 수사기관은 전화 진찰 행위가 '직접' 진찰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해석해 기소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2013년 4월 직접 진찰이 '대면' 진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로 뒤집혀졌다. 


이에 검찰은 비슷한 상황에서 적용할 법 조항을 바꿨다. 의료법 34조 원격의료 조항을 적용해 의사와 환자 사이에 전화진찰은 안된다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비교적 최근인 2020년 11월, 의료인이 전화로 원격지에 있는 환자에게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의료법 제34조의 해석오류
현 변호사는 대법원의 판단에 대해 처음 원격의료법 조항이 만들어질 때의 입법 취지를 잘못 해석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의료법 제34조가 원격의료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 변호사는 원격의료법 조항은 원격의료를 전면 금지하기 위해 도입된 게 아니라 오히려 원격의료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신설됐다고 봤다.

그는 "의료법 제34조가 원격의료를 금지하는 것인지, 아니면 허용하겠다는 것인지 불명확하다"라며 "원격자문 이외 의료인과 환자 사이 원격의료를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지도 않다"라고 꼬집었다. 더불어 의료인이 개설된 의료기관에서 원격지에 있는 환자에게 원격의료를 했을 때도 처벌 대상에 해당되는지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원격의료를 금지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현 변호사는 "원격의료 규정의 입법 취지와 배경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다"라며 "대법원의 판례를 만들어 내면서 의료인과 환자 사이 원격의료는 전면적으로 금지되고 이를 위반한 행위는 모두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게 됐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대법원이 입법자의 의도나 입법 배경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인 잘못은 입법자에게 있다"라며 "당시 의료법이 원격의료를 금지하고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에 이법의 전제가 잘못됐다"라고 비판했다.

◆ 해외의 원격의료 관련 제도는?
현 변호사에 따르면, 미국은 연방법이나 주법에서 원격의료를 금지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90년대부터 원격의료에 대한 보험급여 의무화 등 지원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원격의료를 금지하지 않았고, '스스로 진찰'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해석상 논란이 벌어지지 않도록 했다.

독일의 경우는 법으로는 원격의료를 금지하지 않지만, 법적구속력이 없는 표준의사직업규정을 통해 원격의료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 올바른 해결방안은?
현 변호사는 “원격의료에 관한 우리나라의 의료법 제34조는 매우 이례적인 규정”이라며 “과학과 의료기술이 너무나 달라진 상황에서 입법 개선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의료법 34조를 근거로 의료인과 환자의 원격진료는 전면 금지된다고 해석하고 있다”며 “이러한 해석은 지난 2002년 의료법에 원격의료 규정이 도입될 당시의 입버의도와 상당히 거리가 있고, 외국의 입법추세가 맞지 않는다”고 제시했다.

이어 “입법의 전제가 잘못되고, 입법의 기술이나 체계와 내용에도 문제가 있다”며 “원격의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의료법 34조를 과감하게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원격의료 관련 규정을 삭제하면 남용이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원격의료의 남용은 건보 요양급여 기준을 통해 제한하고, 의료사고는 원격의료에 필요한 시설이나 장비를 규격화하고, 의료인의 주의의무를 강화해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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