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분쟁특례법은 의사의 형사책임을 면책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닌 의사와 환자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의료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한 것
- 의료사고배상책임보험 가입이 피해 환자의 신속한 피해 구제와 불필요한 형사고소를 줄일 수 있어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
최근 의료사고로 인한 의사의 법정구속 사례가 증가함에 따라, 고의 및 중대과실이 아닌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의료진의 형사처벌을 면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은 물론 신속한 피해보상으로 의사와 환자 모두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 차원에서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 형사처벌을 막기 위한 '의료분쟁 특례법' 제정을 촉구했다.
지난 22일 대한의사협회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이러한 문젤르 해결하기 위해 의협 회관에서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을 위한 (가칭)의료분쟁특례법 제정 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 의료분쟁특례법 제정 필요성
이 자리에서 발제에 나선 법무법인 담헌 이준석 변호사는 고의에 준할 정도의 의료과실이나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의료행위 등을 제외하고는 의료인의 형사처벌을 면제하도록 하는 의료분쟁특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의료행위의 특성상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망이라는 악결과를 이유로 의료진이 법정구속되거나 실형이 선고되고 있다며, 민사책임을 넘어 의사에게 과중한 형사책임까지 부담시키는 것은 고의없이 선의로 의료행위를 한 의료인에게 사망과 같은 나쁜결과에 대해 결과론적 관점으로 판단해 처벌하는 것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북미 등 선진국에서는 의사가 구속되거나 실형을 받은 경우가 매우 드물다”며 “선진국은 의료과실을 민사소송 단계에서 해결하거나 의사면허기구가 개입해 해결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과 캐나다 등 선진국은 의료과실을 민사소송 단계에서 해결하거나 의사면허기구가 개입해 해결하는 방법을 통해, 캐나다의 경우 지난 100년 간 의사에 대한 15건의 기소 중 단 1건만 형사처벌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변호사는 "나쁜 결과로 인해 의사들이 형사처벌받는 추세가 지속되면 흉부외과 , 신경외과, 산부인과 등 의료사고 위험 노출이 높은 진료과목 의사들이 줄어들 것"이라며 "결국 외국에서 수술할 수 있는 의사를 수입해 수술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의료분쟁특례법의 장점은?
이어 “의료분쟁특례법은 의사의 형사책임을 면책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닌 의사와 환자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의료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의료사고책임보험에 가입된 경우 ‘형사처벌’에 대한 특례를 규정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업무상 과실을 형사책임 영역으로 확대시키지 않는 대신 민사배상 단계에서 해결하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변호사는 "무면허의료행위를 지시하거나 사회상규에 위배되는 의료행위를 한 경우 등 과실의 정도가 큰 경우는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면 의사에게 과도한 혜택을 제공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 의료사고배상책임보험 가입의 중요성
이 변호사는 의료분쟁특례법 내용 중 의사들의 의료사고배상책임보험 가입이 피해 환자의 신속한 피해 구제와 불필요한 형사고소를 줄일 수 있어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의료사고배상책임보험에 가입된 경우 형사처벌에 대한 특례를 규정함으로써 의료분쟁을 형사책임 영역으로 확대하지 않고, 민사배상 책임단계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의료분쟁특례법을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과 비교하며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하거나 사회상규에 위배되는 의료행위를 한 경우 등 과실의 정도가 큰 경우에만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한다면 의사에게 과도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의 경우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를 신속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보험가입 시 형사처벌 특례를 규정하면서, 12대 중과실의 경우 예외적으로 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의료사고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한 의사의 경우 본인의 부담이 적어 보험사를 통한 의료분쟁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보험금을 지급받게 되는 환자는 의사를 상대로 불필요한 소송을 제기할 필요가 없어 당사자간 분쟁이 원만하게 해결될 개연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변호사는 “형사처벌 특례조항이 생긴다면 의사의 배상책임 보험 가입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의사는 본인의 부담이 적어 보험사를 통한 의료분쟁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고, 보험금을 지급받는 환자들은 의사를 상대로 불필요한 소송을 제기할 필요가 없어 ‘윈-윈’ 할 수 있는 법률”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 변호사는 의료분쟁특례법 제정으로 의료사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의료인 전과자 양산을 방지하고,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 진료과에 종사하는 의료인에게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준석 변호사의 발제에 이어 박명하 서울시의사회 회장을 좌장으로, 전성훈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 김의택 서울특별시지방변호사회 기획이사, 이건주 한국폐암환우회 회장, 장욱 한국의료법학회 총무이사, 박미라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의 지정토론이 이어갔다.
◆ 국가 나서서 제도를 도입해야
지정토론에 나선 전성훈 변호사(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도 “환자들은 합리적인 보상을, 의사들은 방어 진료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서 제도를 만들고 관리해야 할 때”라며 의료분쟁특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의료사고 관련 해결 시스템은 꼬여있다”며 “의료사고를 해결할 수 있는 ‘보험’이라는 시스템이 없고, 의사와 환자가 각자가 알아서 해결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환자 입장에서는 민사소송을 통한 의료과실 피해 보상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보니 ‘합리적인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형사소송을 진행, 부족한 보상을 받으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국가가 나서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의 입법 목적은 경미한 교통사고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막자는 의미였다”며 “현행 의료분쟁조정법에도 의료사고에 대한 ‘면책’, 즉 일정한 의료사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돼 있는 만큼 이를 의료분쟁특례법으로 확대하고 충분한 논의를 통해 의료사고종합보험을 갖춘다면 입법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전 변호사는 “의료분쟁특례법이 제정되면, 환자들은 진료받을 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의사도 진료에 대한 책임을 걱정해 방어진료 할 필요 없이 마음놓고 진료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 의료시스템 전체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으로 해결해야
반면 김의택 서울시변호사회 총무이사는 의료분쟁특례법 제정에 대해 이준석 변호사와 전성훈 법제이사와 사뭇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김 총무이사는 의료분쟁특례법 제정보다 의료분쟁조정법을 개정하는 것이 더 입법 기술상 용이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입법과정에서 의료분쟁정특례법이 의사 직역을 위한 특혜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고, 다른 선진국에서도 입법례가 없어 법안 통과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김 총무이사는 "형사상 범죄에 대해 특정 범죄를 면책하는 제도가 있는 곳은 우리나라 뿐"이라며 "미국과 캐나다는 형사고소를 할 수 있지만 사회분위기 상 하지 않는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의택 총무이사에 따르면, 경미한 의료사고라도 의사들은 수사기관 조사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의사가 진료가 아닌 조사를 받는 것이 손실이라는 것이다.
김 총무이사는 의료사고에 대한 고의 및 중과실을 수사 결과에 따라 면책 여부를 결정하는 것 보다 수사 절차 자체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법률안이 입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분쟁특례법을 제정하는 것 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의료분쟁조정중재법을 보완해 의사들의 의료사고에 대한 면책 범위를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총무이사는 "의료분쟁조정중재법 취지는 형사고소까지 가지 않더라도 피해 환자가 의료사고 증거를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조정중재원의 의료감정인이 의사의 과실 여부를 감정해 주기 때문에 형사소송까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배상책임보험이 만들어지면, 민사소송으로 충분히 손해배상이 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며 "의료분쟁특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분쟁특례법이 건전한 의료문화와 사회적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배상책임보험은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에도 도움
다음으로 나온 장욱 의료법학회 총무이사는 형사처벌을 면책하는 의료분쟁특례법을 입법화 하려면 과거 입법 경험을 살펴봐야 한다며, 과거 의료분쟁조정중재법의 입법과정 상황을 설명했다.
의료분쟁조정중재법은 2012년 4월부터 시행됐지만, 그 입법과정은 순탄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1994년 처음 발의된 의료분쟁조정중재법안에는 의료과실에 대한 형사처벌 특례 조항이 포함돼 있어 반발이 커 진행되지 못했다.
의료과실 형사처벌 특례조항이 삭제되면서 우여곡절 끝에국회를 통과해 시행되고 있다.
즉 의사의 의료과실에 형사처벌 특례는 여전히 형사 법체계 형평성 논란과 국민 정서상 반감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 총무이사는 "의료과실에 의한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은 의사들로 하여금 방어진료를 초래하고, 의료비 증가와 최선의 진료를 받지 못하는 국민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며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특례 적용에 대해 긍정적이지만 형사처벌 적용 의료행위와 대상에 대해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입법과정이 순조로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의료분쟁특례법을 입법화 하려면 특례 적용과 미적용 범위와 대상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다"며 "의료사고 피해 환자와 국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배상책임보험은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 정부의 입장은?
한편, 이날 토론회에 정부 입장을 전하기 위해 참여한 박미라 의료기관정책과장은 “법리적 문제가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보완돼야 하는지, 환자 단체와 의료소비자인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안인지 국회·정부가 함께 검토하겠다”면서 “이 법안의 핵심은 피해자의 손해배상과 의료계의 안전한 진료환경, 의사와 환자의 신뢰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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