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4월 국회에서 결론?

- 의료계는 간호법 제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의사를 포함한 각 보건의료직역의 업무상 행위가 ‘무면허 간호행위’로 간주,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
- 대한간호사협회는 이미 1년 전 국회가 약속한 사항이라며, 간호사 처우 개선과 환자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간호법은 반드시 상정돼야 한다고 강조

의료단체와 간호사협회가 ‘간호법’ 제정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빗고 있는 가운데 국회 상임위원회가 열리는 4월에 법안 상정의 향방이 결정날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년째 국회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사안이지만, 보건복지부가 아직까지 간호법 단일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은 상태라 언제쯤 국회 논의가 진행될지 여부도 주목된다.

보건·의료계에 따르면 올해 2월 심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간호법 관련 심의 등이 4월에 열리는 국회 임시국회에서 추가 논의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의료계 10개 단체 공동비상대책위원회와 대한간호사협회는 서로다른 입장을 내세우며 ‘법안 저지’ 또는 ‘강행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 10개 단체 모인 의료계, 간호 단독법 저지에 사활

간호단독법 저지 10개 단체 공동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7일 국회 앞에서 집회를 개최하고 간호단독법의 철회를 촉구했다.


비대위는 간호법 제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의사를 포함한 각 보건의료직역의 업무상 행위가 ‘무면허 간호행위’로 간주,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의사가 수술 또는 처치 중에 간호사 없이 시급한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되거나, 간호조무사와 응급구조사도 간호사의 지시 없이는 응급 처치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은 집회 개회사를 통해 “간호사 단체들이 무리한 법 제정을 위해 근거가 빈약한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국민건강과 보건의료직역 간의 원활한 협업 구조를 보호하기 위해 단독법이 아닌 통합관리제도를 채택했다는 사실이 간호단독법 제정이 잘못된 방향임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안 내용대로라면 간호사의 의사가 있는 공간이 아닌 독립된 공간에서 단독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며 “그것이 국민들이 원하는 의료 형태와 수준일 리 없다. 간호사 단독 의료행위로 응급상황에 제때 대처하지 못한다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들이다”라고 간호단독법이 국민 건강을 저해하는 법안임을 토로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 곽지연 회장은 “대한간호협회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일선 간호사들의 숭고한 헌신마저 간호단독법 통과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세계 각국의 간호단독법 현황과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간협의 행보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간호사만의 근무 환경 및 처우 개선에 따른 직종간 형평성 문제, 간호 업무에 대한 간호사의 법적 독점화로 인해 의료 현장의 일대 혼란이 발생해 국민에게 정상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상당한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응급구조사협회 김건남 부회장은 “응급구조사들은 응급실, 119 구급대, 해양경찰 등 다방면에서 응급 환자를 돌보고 있으나 간호단독법이 통과될 경우 우리의 업무는 모두 무면허 간호 업무가 될 수 있다”라면서 “응급구조사의 목숨은 간호법 철회에 달려있다. 간협의 이기적인 행태를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한치과의사협회 홍수연 부회장은 “간호사들은 간호 영역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약 120가지가 된다. 간호대를 졸업하고 면허를 따고서도 간호계에 종사하지 않고 공무원이나 교사 등 다양한 영역에 종사하고 있다”라며 “간호사보다 처우가 열악한 응급구조사, 요양보호사 등 전체 직역의 처우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고 간호법이 직역이기주의에서 비롯한 법안임을 설명했다.

이어 “간호법만 제정한다고 간호사의 처우가 좋아지거나 간호 인력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직역과 함께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다듬는 방식으로 노력해야 전체적인 처우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사회 박명하 회장도 연단에 올라 “서울시의사회 임원과 각 구 회장들도 의협을 비롯한 10개 단체와 같은 마음으로 간호단독법 저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앞으로 일어날 모든 관련 투쟁의 선봉에 서도록 하겠다”고 투쟁 참여 의지를 표명했다.

◆ 간호협 "이미 1년전 약속된 바, 감염병 위기 속 간호법 필요"
대한간호사협회는 이미 1년 전 국회가 약속한 사항이라며, 간호사 처우 개선과 환자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간호법은 반드시 상정돼야 한다고 맞섰다.

이들은 법안 제정의 추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국민 참여형 릴레이’도 진행 중이다. 국민 참여형 릴레이는 ‘#간호법이 필요해’ 문구가 담긴 챌린지 이미지를 선택해 친구, 가족 등과 사진을 찍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식으로 참여하는 시위다.

최근 열린 ‘릴레이 챌린지 발대식’에서 신경림 간협 회장은 "간호법은 궁극적으로 국민 생명과 환자 안전을 지키고 새 시대에 부합하는 보건의료 및 간호·돌봄체계를 마련하는 법안이다"며 "변화된 보건의료 환경과 초고령 사회 도래, 주기적으로 닥쳐오는 신종 감염병 등의 위기에 대처하려면 간호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박민숙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부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코로나가 3년째 접어들었지만 병원 현장은 지금도 아수라장이고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 역시 개선된 게 없다"며 "간호사들의 처우와 숙련된 간호사 확보를 위해서도 간호법은 이번 4월 국회에서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호법은 지난해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 최연숙 국민의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후 여당을 중심으로 강하게 추진해온 법안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민석 복지위 위원장은 올해 2월 차후에 열릴 국회 법안소위에서 간호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다만 3월 대선을 통해 정권이 바뀌면서 당초 강력한 의지를 보인 국회의 움직임이 변하기 시작했다. 의료계가 워낙 강력하게 결사반대를 외친 측면도 있지만, 지난해 공통의견을 내세운 국민의힘 측이 점점 간호법 상정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달라진 기류를 감지한 간호협회는 간호법에서 의료계와 가장 큰 대척점을 이룬 ‘처방’ 등 일부 내용을 수정해서라도 법안 상정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올해 초 간호협회를 방문해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다며, 차기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 현실적으로 4월 국회에서 처리 가능할까?
현재 상황으로는 4월 임시국회를 통해 간호법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앞서 2월 법안소위가 이뤄졌으나 마무리 짓지 못해 차후 소위가 열릴 4월에 재논의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직 보건복지부가 의료계 내부 단일안을 제출하지 않은 상태여서 관련 법안 상정이 미뤄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은 4월 셋째주에 간호법안 심의를 마무리하자는 입장이지만, 안건 논의마저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서 국민의힘이 신중론을 꺼내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6월에 열리는 지방선거까지 문제를 이어갈 것이란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국회 내부 관계자는 "민감한 주제라 정확한 답변은 어려우나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는 법안을 정권 교체 시기에 무리하게 강행할 경우 이후 파행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며 "우선 대통령 취임식이 완료된 이후 치뤄지는 지방선거까지 거쳐야 여야가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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