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전 대리수령 위반 후 폐업...과징금 납부의무 주체는?

- 요양기관 및 의료급여기관에 관한 법률적 권리·의무의 주체는 법인격이 있는 개설·운영자
- 신 법령이 피적용자에게 유리하여도, 이를 적용하도록 하는 등의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변경 전에 발생한 사항에 대하여는 변경 전의 구 법령이 적용돼야

의료법상 허용되지 않는 처방전 대리수령을 한 경우, 설령 그 후 병원이 폐업하였다 하더라도 개설자 의사에게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적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의료계가 주목하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8일, 서울행정법원 6부(재판장 이주영)는 최근 A의료법인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3억5000여만원의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최근 기각했다.



◆ 사건 개요

지난 2018년 복지부는 A의료법인이 운영하던 B병원에 대한 현지조사를 실시한 결과, B병원은 일부 고령 환자들에게 직접 처방전을 전달하지 않고 이들이 입소 중인 요양원 직원들에게 처방전을 대신 전달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및 기타 요양급여비용의 산정 관계 규정을 위반하여 보험자·가입자 및 피부양자에게 요양급여비용을 부당하게 청구한 것, 의료급여수가의 기준 및 일반기준 등을 위반해 보장기관 등에 급여비용을 부당하게 청구한 것 등을 근거로 A의료법인에 과징금 부과처분을 했다. 구체적으로는 구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에 의거해 각각 2억6000만원과 9280만원 등 총 3억 5000만원의 과징금을 산정하였다.


◆ A의료법인, '제재사유는 직접 승계되지 않고 소멸된 것' 주장
그러나 A의료법인은 이에 불복해 보건복지부장관을 대상으로 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B병원이 현재 폐업해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 제재사유가 A의료법인에게 직접 승계되지 않고 소멸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건강보험법 및 의료급여법에 따른 과징금 징수의 대상 및 부당이득 징수 대상은 ‘요양기관’과 ‘의료급여기관’이므로, 과징금 부과처분 등은 병원에 대해 이뤄져야 한다는 논리이다.

또한 “2019년 개정된 의료법에 따르면 일정한 경우 노인의료복지시설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환자의 처방전을 대리수령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바, 처분 당사자인 원고에게 유리하게 개정된 신법의 규정을 적용했어야 한다”고 항변했다.


◆ 재판부, 법률적 권리·의무의 주체는 법인격이 있는 개설·운영자
하지만 재판부는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재판부는 A의료법인이 주장한 제재대상의 소멸과 관련해 “국민건강보험법 제98조 제3항 및 의료급여법 제28조 제6항은 업무정지처분의 효과가 그 처분이 확정된 요양기관 또는 의료급여기관을 양수한 자 또는 합병 후 존속하는 법인이나 합병으로 설립되는 법인에 승계되고, 업무정지처분의 절차가 진행 중인 때에는 양수인 또는 합병 후 존속하는 법인이나 합병으로 설립되는 법인에 대해 그 절차를 계속 진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며 “더욱이 요양기관 및 의료급여기관은 의료업의 단위가 되는 인적·물적 결합체에 불과해 법인격이 없으므로, 결국 요양기관 및 의료급여기관에 관한 법률적 권리·의무의 주체는 법인격이 있는 개설·운영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즉 B병원이 비록 폐업했으나 해당 기관에서 이뤄진 진료행위로 인한 요양급여 및 의료급여는 결국 개설자 혹은 운영자인 의사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환수처분에 대한 납무의무 또한 주어진다는 판단이다.

이어 재판부는 “과징금 부과처분 및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은 요양기관 및 의료급여기관에 대한 대물적 처분임과 동시에 위반행위를 한 개설․운영자에게도 그 효력이 미치는 것으로서 대인적 처분의 성격도 가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이 사건 병원이 이미 폐업했다고 하더라도 개설․운영한 원고에게 각 처분을 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또한 A의료법인에 유리한 신설 규정을 적용하지 않은 것의 위법 여부에 관해선 “법령이 변경된 경우 신 법령이 피적용자에게 유리하여 이를 적용하도록 하는 등의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헌법 제13조 등의 규정에 비추어 볼 때 그 변경 전에 발생한 사항에 대하여는 변경 후의 신 법령이 아니라 변경 전의 구 법령이 적용돼야 한다”며 A의료법인의 주장을 일축했다.

A의료법인 측이 언급한 개정된 의료법은 처방전의 발급 등에 관해 환자의 거동이 현저히 곤란하고 동일한 상병에 대해 장기간 동일한 처방이 이루어지는 경우, 환자의 가족 혹은 노인복지법 제34조에 따른 노인의료복지시설에 근무하는 사람 등에게 처방전을 교부하거나 발송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 개정된 의료법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2020년 2월27일부터 시행됐고, 위 규정의 소급적용에 관한 경과규정을 두지 않았다. B병원은 2017년 9월부터 2018년 2월까지 대면진료 없이 처방전을 발행했으므로 해당 법령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병원의 의사들은 장기요양기관 입소환자를 직접 진료하지 않았음에도 직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입소환자의 처방전을 교부했고, 그 위반행위가 약 6개월의 장기간에 걸쳐 이뤄졌으며, 그 횟수와 금액도 상당하므로, 위법성의 정도 및 비난가능성이 결코 가볍지 않다”며 A의료법인 측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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