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과·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 계속 줄고 있어
- 건강보험 문제도 십수년간 그대로... 사실상 방치 수준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1967년 의료보험법이 제정된 이후, 1977년 공무원과 직장 의료보험 도입을 시작으로 1988년에는 전 국민 의료보험으로 확대되었다. 의료보험이 처음 도입될 때 정부는 “의료보험을 적용할 사람이 10%밖에 되지 않을 것이고, 나머지 90%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을 것이니 잘 사는 의사들이 양보하라”라고 설명하며 설득했다.
그 과정에서 의사의 의료기술 대가를 비현실적으로 평가절하한 점이 두고두고 큰 문제가 되었다. 그 결과로 진료행위를 통해서 수익을 보전해오던 내과 계통의 의사들도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수술과 의료행위가 많은 외과 계통의 의사들에게 큰 타격으로 돌아왔다.
이런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십수년간 이어져 왔다. 자연스러운 결과로 내과 계통의 의사에 비해 외과 계통의 의사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얼마 전에는 서울의 빅5이며 세계적인 병원이라고 자부하던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이 발생했는데도 해당 병원에서 수술할 수 없어 다른 병원으로 전원돼 끝내는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와 가족도 비슷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필수의료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여러 차례의 논의가 있었으나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건강보험료를 증액하는 방안이나 국고 지원 등의 방법에서 관련 구성원들 간의 합의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나 정책 당국자, 보건복지부 등 모든 사람들이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정책에 대한 책임 부담으로 제대로 된 개선이 어려웠다. 정치권에선 건강보험료를 올리면 표가 떨어진다고 생각해 소극적이었고, 의료인들도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의료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필수 의료를 제대로 살려낼려면 경증 질환에 대한 의료 이용 제한과 합리적인 의료전달체계 재정립이 필요하다. 의사 1인당 하루 진료 환자 수를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의사 수가 부족하다면 필요에 따라 의대 정원도 일부는 증원해야 한다. 또한, 건강보험 기준이나 의료법 기준을 넘어서는 특별한 진료에 대해 의사가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환자가 동의하면 건강보험 기준에서 벗어나는 진료가 가능하도록 ‘합의 비급여’를 인정해야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의료행위료가 의료보험의 시작 단계서부터 지나치게 낮게 책정이 되어 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제도는 유지하면서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선 상대가지점수에서 의사의 행위료를 제외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0년 통계에 따르면 외래 이용 횟수 1위, 입원일수 2위를 기록하고 있는 곳이 한국이다. 코로나19 와중에 상기도 질환 진료를 많이 한 소아청소년과와 이비인후과는 개인위생이 강화되어 자연스럽게 환자가 급감해 경영난을 겪었지만 사망률의 변화는 없었다. 외래 이용환자의 경우 중증보다 경증 환자들이 대다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증질환자는 의료 이용을 자제하도록 하고, 의료 이용이 어려워질 저소득층은 공공의료기관 이용을 유도해야 한다. 의료전달체계를 강화하면 지역 의료기관과 1차 의료기관의 이용이 늘어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건강보험료 인상을 최소화하면서 필수의료 지원을 늘릴 수 있다. 이렇게 해도 생기는 부족분은 정부 재정 투입으로 보완해야 할 것이다.
공적인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더 잘 유지하려면 국민도 의사도 일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 필수의료에서 전공의 모집이 줄어들고 수술할 수 있는 외과 계통 의사들이 점점 줄어들 뿐 아니라 고령화하고 있다. 이런 명백한 사실을 보면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반세기가 넘도록 의료를 왜곡하고 정부와 의사, 의사와 보험사의 갈등을 키워왔다. 정책 당국자들과 국회는 해묵은 비정상을 끝낼 전향적 개혁 조치를 내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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