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환자 의료정보를 상품개발에 쓰고 있다? 정부는 뒷짐만

- 의료정보 공공데이터 수익에 활용하는 보험사들
- ‘새 상품 개발이 목적’임에도 허가한 심평원
- 5개월간 1,600만 원에 685만건 가명정보 나가

정부가 보건의료산업 활성화와 국민 건강권 증진 등의 공익적인 목적으로 환자의 의료정보 활용을 허가했는데, 정작 보험사들은 수익창출을 위해 활용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험사들이 아예 “새 보험상품을 개발해야 하니 개인 의료정보를 달라”고 요청해도 건보당국은 별다른 제한이나 검토 없이 정보를 내주고 있었다.



1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종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민간보험사의 공공데이터 활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 보험사 10곳이 지난해 말부터 올해 4월까지 5개월간 685만 건의 개인 의료정보를 심평원으로부터 받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국회에서 '빅데이터 3법'이 통과되면서 지난해 말부터 가명처리된 개인 의료정보를 공공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윤석열 정부도 보건의료산업 육성을 위해 공공데이터 이용 활성화를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의료산업과 다소 거리가 있는 보험사들이 자사에 유리한 보험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정보를 열람한 것으로 조사됐다. 열람 사유로 '새로운 보험상품 개발', '헬스케어 서비스 개발'을 명시한 곳도 있었다. 민간보험사는 의료정보를 보기 전 이용개요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환자들의 정보를 자사 수익에 도움이 되도록 이용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A보험사는 뇌혈관질환 및 허혈성심장질환 관련 자료를 열람한 뒤 제출한 '심평원 환자표본자료 분석 결과 보고서'를 통해 질환별 통원 횟수와 보험사들의 연간 통원 한도 설정이 성별, 연령별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공공데이터를 열람하면 이후 연구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데 보험사의 수익과 관련한 내용이 보고서에 담긴 셈이다.

민감한 의료정보를 보는 데 드는 비용은 건당 약 2.3원 정도였다. 보험사 10곳이 685만 건의 개인정보를 보는 데 낸 돈은 1,595만 원으로, 건당 약 2.3원꼴인 것이다. 특히 공공데이터를 열람할 때는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수수료는 자료 건당이 아닌 열람 시간으로 계산해 책정된다. 이와 관련해 B보험사는 300만 원을 내고 2011~2020년 환자표본 10년 치 자료를 받아 갔다.


전문가들은 환자 정보를 영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한 국민건강보험법과 충돌하는 만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심평원과 달리 '사적 이윤 추구에 쓸 수 있다'는 이유로 보험업계의 자료 제공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건보공단과 심평원의 개인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건 공적인 업무에 써도 된다는 의미"라며 "비식별(가명) 처리한 개인정보를 쓸 수 있게 법이 바뀌었지만, 사적 활용을 금지한 건강보험법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다만 공공데이터 활용은 세계적 추세로, 보건의료산업 육성을 위해 제도를 보완한 뒤 사용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공공분야가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민간이 해야 하며, 이건 가명정보를 이용하는 것"이라면서도 "보험사들이 가입 거절이나 가입자에게 불리한 상품을 개발하는 데 쓰이지 않게 합리적으로 규제·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종윤 의원은 "국민 건강권 증진을 위해 공공데이터를 민간에 개방했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민간보험사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고 있다"며 "개인정보가 악용되지 않도록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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