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의료진 손 들어준 원심 판결 파기환송
- 사망원인 두고 중재원·의협 감정 의견 엇갈려
- “한 쪽 의견 채택하기 전 양쪽 감정서 면밀히 따져봐야”
불안정성협심증으로 수술 받은 환자가 약 한 달 뒤 사망한 사건에서 의료진 과실여부를 두고 대법원까지 이어진 법정 싸움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대법원은 사망 원인을 두고 두 의료감정기관이 엇갈린 감정서를 내놓았는데, 재판 과정에서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최근 사망한 환자 유족이 대학병원 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재단의 승소판결을 내린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방법원으로 돌려보내 다시 심리하도록 지시했다.
환자 A씨는 지난 2015년 7월 9일 실신해 불안정성협심증으로 B대학병원에서 치료받고 상태가 호전되자 7월 14일 퇴원했다. 그러나 2주 뒤인 같은 달 28일 다시 실신 등 증상으로 B병원을 찾았다. 의료진은 A씨가 이전보다 혈압이 낮자 퇴원 당시 처방한 심부전 치료제 네비레트정(성분명 네비보롤)을 원인으로 보고 처방을 중단했다.
A씨는 약 한 달 뒤인 8월 20일 세 번째로 B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도 실신 증상을 보였다. 의료진은 기립성저혈압이라 진단하고 혈액검사 외 추가 검사 없이 퇴원시켰다. 일주일 뒤 A씨는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유족은 B병원 의료진이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렀다면서 병원 재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유족 손을 들어줬다. A씨가 세 번째로 병원을 찾은 8월 20일 별다른 추가 조치가 없었던 점을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3차 의료기관인 대학병원으로서 환자 A씨가 반복적으로 실신하는 원인을 찾기 위해 관상동맥조영술이나 심장초음파 검사 등 정밀검사를 시행했어야 한다"면서 "환자의 진단과 치료를 위해 최선의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그러나 이어진 항소심(원심)에선 결과가 뒤집혔다. 의료상 과실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사망 원인을 두고 의료감정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소속 감정의는 기립성저혈압으로 진단하면서 추가적인 조치를 하지 않은 점이 부적절하다고 봤다. 만약 검사를 진행했다면 사망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지적이다.
반면 대한의사협회 소속 감정의는 의료진이 추가 검사는 하지 않았어도 약물을 조절하면서 경과를 관찰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추가 검사를 했다면 사인 규명에는 도움이 됐겠지만 그 당시에는 필요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A씨가 심전도나 심근효소 변화가 없었다는 이유다.
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의료 분야 전문가 의견이 갈릴 정도라면 병원 조치가 의사의 합리적인 판단 범위를 벗어났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면서 "추가 검사를 시행하지 않은 과실이 있더라도 사망과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원심이 전문가 의견이 상반되는데도 이를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법원은 감정 결과가 상반되면 감정이 적법하게 이뤄졌는지 조사해야 한다. 만약 감정 결과는 동일한데 감정기관 의견이 모순되거나 불명확하면 증인신문, 사실조회 등으로 더 정확한 감정의견을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중재원과 의협 감정의견이 엇갈린 부분을 다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8월 20일 당시 환자 상태를 보면 "지속적으로 호전되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8월 20일 혈액검사에서 A씨의 심근효소 수치는 0.09ng/㎖였다. 이보다 앞서 진행한 7월 9일 검사(0.74ng/㎖)나 7월 13일 검사(0.14ng/㎖)보다는 낮지만 참고치 기준인 0.04ng/㎖보다는 높다.
대법원 재판부는 "이에 대해 중재원 소속 감정의는 심근효소 이상 소견을 냈지만 의협 소속 감정의는 심근효소에 변화가 없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의료진 조치가 '일반적인 과정'이었다고 봤다. 원심이 이런 의협 감정 의견을 채택하려면 A씨의 심근효소 수치를 어떻게 평가하는 게 타당한지 심리하고 더 정확한 감정의견을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하고 대구지법에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환자 A씨의 사망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의료진이 추가 검사 등을 하지 않아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본다면 환자 사망과 인과관계도 추정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A씨가 의료진 과실이 없었더라도 사망했을 가능성이 발견되면 이를 참작해 의료진 책임 정도를 정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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