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정신성 약물 불법 투약 후 환자 사망하자 시체 유기
- 법원 “‘개정의 정’ 뚜렷하지 않다는 보건복지부 판단 및 결정 존중”
지인에게 향정신성 약물을 불법으로 투약했다가 그 영향으로 환자가 사망하자 이를 은닉하기 위해 시체를 유기한 혐의로 실형을 살았던 의사에 대해 법원이 보건복지부의 면허재교부 거부 처분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면허재교부를 거부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면허재교부를 위한 심사 요건 중 하나인 ‘개정의 정(잘못을 뉘우치는 마음가짐)’이 뚜렷하지 않다는 보건복지부의 판단을 존중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등법원 제4-1 행정부(부장 판사 권기훈)는 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면허취소 의료인 면허재교부 거부처분 취소 청구에 관련해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청구를 기각했다.
서울시 강남구에서 산부인과 의원을 운영하던 A씨는 지난 2012년 7월 30일 오후 7시경부터 동료 의사들을 만나 술자리를 가졌다. 이후 같은 날 오후 11시 지인 B씨의 부탁을 받은 A씨는 자신의 병원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인 메디졸람 등 13개 약품을 섞어 B씨에게 투약했다. B씨는 이후 약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부작용으로 호흡이 멈춰 사망했다.
하지만 A씨는 구호조치 대신 자신의 병원에서 향정신성의약품 및 각종 마취제의 불법 투약 행위가 들통날 것을 우려해 시신을 자신의 차로 옮겨 한 공원 주차장에 주차하고 떠났다.
A씨는 2013년 마약류관리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1년 6개월과 벌금 3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이후 2014년 8월 보건복지부는 A씨에게 의사 면허를 취소했고, A씨는 1년 6개월의 복역을 마친 후 의사면허 재교부 제한기간인 3년이 지난 2017년 면허재교부를 신청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이를 거부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면허가 취소된 지 3년이 지나 재교부 제한기간이 지났고, 재교부 신청요건을 모두 충족했다”며 “복지부는 면허재교부 신청을 불허하면서 처분 근거와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의사면허를 다시 발급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건이 발생한 이후 10년 동안 A씨가 충분히 뉘우치고 반성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1심 재판부는 “A씨가 중대한 잘못을 한 것은 명백하나 오랜 기간 참회한 만큼 의료 기술이 필요한 현장에서 봉사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의료법의 취지와 공익에 부합하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2심에서 판결이 완전히 뒤집혔다. 서울고등법원은 “의료법 내의 ‘개전의 정’이 뚜렷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말하면서도 그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며 “그렇다면 의료법 목적 등을 종합해 해당 요건 판단 재량권은 보건복지부에 부여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보건복지부는 이 사건 처분 이후 업무 외 목적으로 약물 투약 행위 도중 환자가 사망에 으른 경우에는 면허를 재교부한 사례가 없다”고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범행의 중대성과 의료법의 목적을 고려했을 때 A씨의 면허재교부가 공익에 부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A씨는 업무 외적인 목적으로 향정신성의약품을 포함한 여러 약품을 무분별하게 혼합하여 투약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사체를 유기해 죄질이 중하다”며 “원고의 범행은 치료과정에서 과실로 발생한 일반적인 의료사고와 본질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어 “종합적인 범행의 경중을 고려해 보았을 때 A씨의 의사면허 취소는 공익에 반하지 않고 의료법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덧붙이며 1심 판결을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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