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 앓는’ 환자는 응급상황에도 4시간 달려 서울로 가야하는 현실

- 지역 병원서 치료기록 없다며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서울로 환자 이송
- 유인술 충남대 응급의학과 교수 “어떤 방식으로 암 수술, 치료 해왔는지 지역병원 알 수 없어”

‘큰 병에 걸리면 서울로 가라’는 말처럼 매년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암 환자의 30%, 소아암으로 한정하면 70%는 서울 등 수도권 대형병원을 찾는다. 장시간 이동거리를 감수하고 수도권으로 향하거나 아예 병원 근처에 작은 방을 얻어 서울살이를 시작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수도권 대형병원 근처에는 하나둘 환자 숙소 시설이 들어서더니 이제는 고시원과 고시텔, 세어하우스, 요양병원 등이 밀집한 ‘환자촌’이 되어버렸다.



지난달 9일 자정 무렵 식도암을 앓고 있는 고(76)씨를 태운 사설 구급차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달려왔다. 고씨의 자택은 전남 완도군 노화도로 서울 강남의 삼성병원과는 수백km가 떨어져 있는 곳이다. 응급상황에서 왜 이런 먼길을 거쳐 강남으로 온 것일까.

전날 숨이 차고 가래가 멈추지 않자 고씨는 딸과 사위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후 2시간에 걸려 광주광역시의 딸 집으로 이동해 하루를 보낸 후 이틑날 날이 밝자마자 광주의 한 종합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의료진은 고씨의 항암과 수술 치료를 한 적이 없어 난색을 표했다. 때문에 사설 구급타를 타 4시간을 달려 처음 수술받은 삼성병원으로 온 것이다. 서울 의료진은 폐에 염증이 생겨 주변 조직에 감염이 퍼진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6월과 8월 각각 항암치료와 수술로 인해 입원했다가, 같은해 11월 병원 근처 원룸임 ‘환자방’을 뺄 때만 하더라도 완도의 집으로 돌아가 일상 복귀를 꿈꿨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가서도 서울 병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고씨는 지난해 초 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워지면서 큰 병원이 없는 완도를 떠나야 했다. 그를 처음 진료한 광주의 의료진은 “진행된 식도암인 것 같다”며 지역 종합병원을 추천했다. 하지만 광주 병원도 수술이 여의치 않다고 했고, 가족들은 그를 삼성서울병원으로 데려왔다. 이후 암 치료와 합병증인 부정맥(심장박동 불규칙), 식도 천공(식도 구멍)으로 줄곧 강남 일원동 일대 환자방에 거주하며 입·퇴원을 반복했다.

지난해 11월 초 완전히 퇴원한 줄 알았던 수동씨가 또 서울로 이송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말 새벽, 딸 집에서 지내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호흡도 가빠졌다. 가족은 급히 주변 응급실을 찾아 헤맸지만 갈 수 없었다.

고씨의 아들을 “지역 대학병원에 문의했는데 의무기록이 없어 응급실 진료가 어렵겠다고 했다. 결국 사설 구급차를 불러 서울 응급실에 갔다”며 “응급 상황에서 서너 시간 걸려서 서울까지 간다는 게 굉장히 두렵다”고 했다. 고씨는 두번의 응급실행 모두 사설 구급차를 이용했고, 그때마다 47만 원을 썼다. 119구급차량은 중증외상 등을 제외하고는 먼 거리 관외 이송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항암과 수술 치료를 받은 지역 암 환자들에게 수동씨와 같은 응급 상황은 불안한 일상이다.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호중구(세균·박테리아를 막아내는 포식 세포) 감소, 발열, 쇼크, 폐렴 등을 겪더라도 지역 병원의 응급실에서 치료받기 힘든 탓이다. 광주에서 민간 구급차 6대를 운영하는 업체에서 일하는 이(33)씨는 “한달에 구급차 한대당 8~10건 정도 서울로 이송한다”며 “이 중 30%가 서울 병원에서 치료받는 암 환자고, 나머지도 심장이나 혈관 수술 등 지역에서 치료가 어렵거나 서울 치료를 원하는 환자”라고 전했다.

유인술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어떤 방식으로 암 수술을 했고, 항암치료를 했는지 지역 병원엔 정보가 없다. 정보가 하나도 없으니 아주 긴급한 응급 상황만 해결하고, 원래 치료한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게 된다”고 했다. 강정훈 경상국립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암 환자의 치료 시설에 대한 접근성은 치료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라며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를 받는 암 환자들이 병원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만큼 위험해진다”고 했다.

지역 암 환자들이 서울에서 치료받는 경우, 병원까지 거리는 얼마나 될까?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5~18일 서울로 간 비수도권 암 환자(보호자 대리 응답과 복수 응답 가능) 249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해 유효 응답자(이하 응답자) 188명의 답변을 분석해보니, 환자 거주 지역에서 서울까지 평균 이동 시간은 3시간 15분이었다.

서울 병원에서 암 치료를 받으며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지 묻자환자들 열명 중 네명(84명, 44.7%)이 거주지 복귀 시 응급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했다. 상당수 환자들이 제때 응급 치료를 받지 못할까 걱정하는 것이다.

같은 질문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답한 어려움은 ‘장거리 이동으로 인한 체력 소모’로 전체의 67.6%(127명)였다. ‘교통비 부담’(108명, 57.4%), 숙박비 부담(108명, 57.4%) 등 장거리 이동에 따른 부대비용도 꽤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치료비 부담(64명, 34.0%)이나 생업 유지 어려움(50명, 26.6%) 등 서울 등 수도권에 사는 암 환자도 공통적으로 느끼는 고충 이외에 지역간 의료 격차로 인해 응급 상황 대처 걱정, 체력 소모, 비용 부담까지 떠안아야 한다. 서울과의 거리만큼 환자는 더 위험해지고 더 고통받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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