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보고 위헌소송 결국 합헌 판결... 의료계 ‘절망’

- 9명 중 5명이 찬성표 던져 합헌 결정... 4명은 “비급여 진료 정보, 매우 민감한 의료정보” 반대
- 의료계 “비급여 보고제, 결국 필수의료 분야를 더욱 몰락시킬 것” 비판

간호법과 면허취소법 등의 국회 직회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의료계에 또 다시 악재가 덮쳤다. 의료계가 그간 강하게 반대해 온 것중 하나인 비급여보고도 앞으로 꼭 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헌법재판소가 비급여보고 의무를 담고 있는 의료법의 조항들이 ‘합헌’이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위헌 판결이 날 것으로 유럭했던 탓에 의료계가 더욱 절망에 빠졌다.



23일 헌재는 비급여 보고 의무를 담은 법이 위헌이라며 대한개원의협의회, 서울치과의사회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을 최종적으로 기각했다. 위헌 여부 판단이 된 법 조항은 ▼의료법 제 45조의2 제1, 2, 4항 ▼의료법 92조 제2항 제2호 ▼의료법 시행규칙 제42조의3 제1항이다. 여기에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공개에 관한 기준까지 헌법소원 심판의 대상이었다.

의료기관의 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비급여의 가격 뿐만 아니라 항목, 기준, 금액, 진료내역 등을 보고하게 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고를 토대로 비급여 현황을 조사분석해 결과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급여 현황조사 분석 및 결과 공개의 범위, 방법, 절차 등의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비급여 보고제도 시행을 위한 고시를 행정예고까지 했다.

의료계와 치과계는 비급여 보고 제도가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해 의료인의 ▼행복추구권(행동 자유권) ▼직업선택의 자유(직업수행 및 경쟁의 자유) ▼평등권 ▼환자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포괄위임금지 원칙도 위반한다고 했다.

헌재 재판관들은 의료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급여 보고 의무 조항은 비급여 실태 파악을 위한 기본적이고 법률적인 사항을 정하고 있기 때문에 '법률유보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해 의사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도 않는다고 봤다.

이어 "비급여 보고대상인 상병명, 수술시술명은 비급여 실태 파악에 대한 진료정보만 포함되고 환자 개인정보는 포함되지 않음을 예상할 수 있다"라며 "그동안 시행된 표본조사 방법으로는 비급여 현황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고 병원마다 코드 등도 제각각이라 구체적인 진료 내역을 확인할 수도 없다. 입법 목적에 필요한 용도로만 제한적으로 이용하고 안전하게 관리되도록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비급여 설명 의무 조항에 대해서도 환자 알권리와 의료 선택을 고려하기 위함이라며 의사들의 직업수행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환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비급여 항목과 비용을 알아야만 지불 능력, 비용 대비 효과 등을 고려해 해당 진료받을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라며 "의료기관 종사자도 비급여 설명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개설자의 설명의무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 설명의무 조항은 과잉금지 원칙에 반해 의사들의 직업수행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9명의 재판관 중 4명은 이에 반대 의견을 냈다. 비급여 보고의 의무조항이 의사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대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환자의 개인정보 자료 결정권에서 중대한 제한을 초래할 수 있는 의료정보의 수집과 제공을 규율할 때는 반드시 입법자가 법률로서 수집되는 의료정보의 범위와 기준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며 “보고 의무 조항은 환자의 광범위한 진료내역을 보고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준후해야 할 최소한의 것이 무엇인지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라며 법률유보 원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위법령에서도 어떤 범위의 진료내역을 보고대상으로 정할 것인지도 예측하기 어렵다고도 했다.개인정보보호법에 감염 정보에 관한 규정이 있다는 이유로 비급여 진료를 연결시키는 것은 포괄위임금지 원칙에도 반한다고 했다.

이어 "상병명, 수술 및 시술명은 환자 정신이나 신체의 단점을 나타낸다"라며 "비급여 진료 정보는 매우 민감한 의료정보다. 신체적, 정신적 결함을 숨기기 위해 비급여 진료를 받기도 하기 때문에 보호의 필요성이 크다.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은 채 사실상 모든 비급여 진료 정보 일체를 보고하도록 하고 있으며 환자에게 자신의 의료 정보 제공을 거부할 권리조차 보장하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급여와 비급여 정보가 합쳐지면 국민 건강에 관한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정보를 구성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개인의 모든 정보가 국가 권력의 감시, 통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며 "정부의 적절한 정보 처리에 대한 장치도 별도로 마련하고 있지 않다. 사적 진료계약 영역에까지 국가의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것은 건강보험제도의 건전한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의료수준이 저하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헌재 판결에 따라 복지부가 추진하던 비급여 보고 의무 정책 추진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행정예고까지 했지만 헌재 결정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라며 "헌재 판단으로 불확실성은 줄었으니 정책 추진에 속도가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료계는 망연자실하는 모습이다. 한의사 초음파 사용 허용 대법원 판단부터 간호법 및 의사면허법 국회 본회의 등 의료계 악재 현안이 잇따라 터지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헌재 판결과 동시에 유감을 표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치협은 헌재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히며 "이번 판결에 대한 대책 마련에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치과의사회와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서울시의사회도 즉각 성명서를 내고 "비급여 보고 제도"를 여전히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서울시의사회는 "헌재 판결과는 별도로 정부는 국민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는 비급여 공개를 중지해야 한다"라며 "비급여 공개로 인한 저가, 저질 진료 범람 및 이로 인해 발생하는 국민 피해는 돌이킬 수 없다. 앞으로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대한 위헌소송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이세라 부회장은 "현재 외과계는 저수가를 극복할 방법으로 비급여를 이용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비급여를 통제하기 위해 실손보험사는 의료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비급여 보고제는 외과계, 특히 필수의료 분야를 더욱 힘들게 하고 나아가 전공의 모집 불가능 상황을 유도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대개협 회장의 신분이면서도 개인자격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김동석 회장도 아쉬움을 표시했다. 김 회장은 "4명의 재판관이 반대 의견을 냈다. 압도적인 합헌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라며 "합헌이 나왔다고 면죄부가 된 게 아니다. 정부도 이겼다고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헌법소원 과정에서 과잉입법, 개인정보에 대한 부분 등을 반영해서 정책을 보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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