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의료정책’ 5년 전 우려에도 강행한 초음파·MRI 급여화 결국 재검토

- 의사단체 관계자 “당시 말뿐인 협상, 4차례 일방적 회의 후 강행”
- “‘급여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의사 및 의료계 우려, 철저히 무시 후 회의록에도 안 남겨”
- “포퓰리즘적 정책, 교훈삼아 반복하지 않는 보건의료정책 절실”

지난 28일 정부가 의료계와의 협의를 거쳐 건강보험 재정누수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MRI·초음파 급여기준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일각에서는 “5년 전 의사들의 경고를 무시한 채 강행한 강행했던 정책”이라며 “이를 교훈 삼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7일 오후 서울 국제전자센터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등 의료계와 ‘MRI·초음파 급여기준개선협의체 제1차 회의’를 개최했다. 보건당국과 의료계는 이날 첫 번째 회의에서 MRI·초음파 관련 급여기준 개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협의체 운영 방안, 검토 일정을 포함한 급여기준 개선 추진계획을 논의했다.

MRI·초음파 검사는 지난 2005년부터 암 등 중증질환에 대해서만 건강보험을 적용해왔지만 2017년 8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문케어)에 따라 일반 질환(의심자)까지 대폭 확대했다. 정부는 2018년 1월 15일 첫 회의를 시작해 그해 2월 22일까지 총 4차례의 신속한 회의와 행정 예고(그해 3월 13일) 직후인 3월 29일 의협과의 마지막 협상을 통해 강행됐다.

이런 과정 속에서 보건복지부와 의사회, 협회 등 의료계가 여러차례 협상에 나섰지만 의료계의 입장은 거의 반영되지 못한 채 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원하는 대로 일방적으로 강행됐다. 당시 의사들은 재정 악화와 필수의료 붕괴 등을 이유로 이를 반대했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었던 한 의사단체 관계자는 “당시 보건복지부는 상복부 초음파를 급여화하며 비급여로 남겨둘 필요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의료계는 줄곧 정부가 고시한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의 급여기준으로만 급여를 인정하면 일선 현장에서 많은 갈등이 발생할 것이며 급여 기준과 도저히 맞지 않는 것은 비급여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보건복지부는 전혀 반응하지 않고, 심지어는 이런 내용을 회의록에 남기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철저히 무시하고 회의록에도 남기지 않았던 의료계의 우려는 5년이 지난 지금 현실이 된것이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대형병원 간호사가 제 때 뇌수술을 받지 못해 근무중 사망하고, 지역 소재 의료기관에는 출산을 할 수 있는 병원이 부족해졌다”며 “외과계 의사는 줄어들어 지방에서 응급수술을 받으러 수도권 병원으로 오는 상황이며, 소아 환자를 입원시킬 수 없는 대학병원들의 이야기 마저 나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전공의 모집에서도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외과계 전공의들은 대부분 미달이며, 심지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거의 지원자가 없다”며 “예견했던 ‘비극적인 초유의 사태’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현상의 원인이 잘못된 건강보험 수가 책정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편향된 건강보험 수가 정책으로 정작 필요한 곳에는 재정을 지출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수가 구조 때문에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하거나 다빈도 질환을 진료하는 전문과목만 박리다매로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며 “‘일종의 싸구려 보건의료 정책’의 문제점인 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놓친 점에 대해서는 수요와 공급을 결정하는 가격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모든 재화는 가격이 떨어지면 수요가 급증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며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 했을 때는 건강보험은 물론 실손의료보험의 적용도 가능해지고, 이는 의료서비스 이용 비용이 낮아져 해당 의료서비스의 수요를 급증시킨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상복부 초음파와 뇌와 뇌혈관 MRI 검사의 가격 저항선을 없애자 검사수가 급증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당시 제기 됐던 필수의료 지원에 대해서도 “당시 전문가들이 맹장 수술비에 책정된 의사 행위료(기술료)와 제왕절개 수술비 등의 필수의료 분야가 생존할 수 있도록 저수가 문제를 우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뒤에 재원이 남을 때 상복부 초음파나 다른 비급여의 급여화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보건복지부는 전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결국 정부의 의중대로 강행된 급여화는 ‘문재인 케어’의 일종으로 시행되며 가장 우선시 돼야 할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지원을 망각했다. 여기에 더해 고령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에 대한 건강보험 진료비도 급증했기에 5년이 지난 지금 서둘러 문재인 케어 정책을 수정하는 상황에 오게돼 버렸다.

이 관계자는 “초음파나 MRI 촬영과 같은 검사가 의학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검사를 위해서는 적절한 통제장치가 있어야 한다”며 “의학적 기준은 물론이고 소비자의 합리적인 비용 지불(본인부담금)이 통제 장치로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만큼 이 부분을 무제한으로 풀어주는 것이 포퓰리즘이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론적으로 보면 건강보험 자체가 바로 포퓰리즘인 셈이다. 의료비를 강제적으로 지나치게 낮추어주니 의료이용이 급증하지만 진료과목별로 균형이 깨진 건강보험 규정으로 인해 환자 발생빈도가 적은 필수 의료 분야는 여기저기에서 비명 소리가 난다”며 “필요한 데는 지원이 안 되고, 필요성이 떨어지는 분야에 의료 수요가 증가하니 건강보험 재정도 버티지를 못하고 악화된 건강보험 재정은 의사,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들에게 돌아갈 몫도 넉넉지 못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를 교훈 삼아 전문가와 의료계의 반대에도 강행되는 포퓰리즘적 정책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와중에 간호사들은 간호법을 통해 자신들의 생존과 처우만을 개선하겠다고 아우성치는 상황”이라며 “이는 모두 건강보험 설계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이며, 시간이 갈수록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건강보험은 건강보험료와 한정된 재정으로 운영되는데 문재인케어에서 보았듯이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며 “‘5년 전 그때 '오늘' 이럴 줄 알았고, 5년 뒤 그때 이미 이럴 줄 알았다’를 반복하지 않는 보건의료정책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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