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과의사회 “차라리 폐과... 이제 아이들 건강과 전혀 다른일 하겠다”

- 임현택 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 이제 기대도 하지 않는다”
- 질병청의 로타바이러스 백신 국가필수예방접종 포함에 “죽으라는 이야기”
- 소청과, 최근 10년간 유일하게 연평균 진료비 감소해... 5년간 662곳 폐업

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도저히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며 국민과 작별인사를 한다고 밝히며 사실상 폐과 선언을 시사했다.



7일 소청과의사회에 따르면 의사회 측은 오는 28일 오전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과목 폐과’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임현택 소청과의사회 회장은 “그저 제스처를 취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폐과하겠다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임 회장은 앞서 지난 2019년에도 폐과에 대한 언급을 통해 경고한 바 있다.

임 회장은 “장시간에 걸친 이사회 회의를 진행한 끝에 더 이상은 복지부와 질병청, 기획재정부가 소청과의사들에게 미래가 있음을 보여주는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현 34개 운영중인 달빛어린이병원을 100개로 늘리는 등의 정책을 발표했으나 기존 34개의 달빛어린이병원조차 소청과 전문의가 부족한 곳이 수두룩해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인턴 의사들 중 소청과 전문의를 희망하는 의사는 없다. 단순히 부족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는 수준이다. 실제로 올 상반기 전국 대학병원 38곳에서 소청과 레지던트(전공의)를 지원한 의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임 회장은 ‘폐과’의 의미에 대해 “이제 아이들 건강과는 관련 없는 전혀 다른일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임 회장은 수 차례 목이 메여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감정을 절제하며 임 회장은 “의사회는 소아청소년 진료가 아닌 전혀 다른 분야에 종사하면서도 충분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철저히 교육하는 등의 준비가 되었을 때 소청과 간판을 내리고 다른 분야의 간판을 올려 일을 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일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하여 의사회는 현재 홈페이지의 ‘페드넷’을 통해 각 회원들의 의견도 수렴하고 있다.

복지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의 소청과 진료 가능 병원은 3,247개소다. 지난 5년간 617곳이 새로 개업을 했고, 662곳은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됐던 2020년과 2021년에는 2년 만에 78곳이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 회장은 “지난 수년간 소청과가 위기에 빠질 때 정부는 무엇을 했냐”며 반문했다. 이어 “당장 어제(6일) 질병청은 생후 2~6개월 영아에 대한 로타바이러스(장염)에 대한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에 포함시켰다”면서 “이 조치로 인해 동네 의원급 소청과들은 백신 접종으로 얻는 수익이 40% 수준 밖에 남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질병청 자료에 의하면 국가필수예방접종에 포함된 백신의 약값은 조달청 공개입찰을 통해 ‘조달가’로 책정되고, 접종수당(접종 시행비)은 건당 1만 9,690원으로 고정된다.국가필수예방접종에 포함되지 않은 백신은 각 병원에서 제약회사와 약값을 계약하고 시행비도 시장 가격에 따라서 결정할 수 있다.

때문에 이번 로타바이러스 백신처럼 새롭게 국가필수예방접종에 포함될 경우 그동안 받았던 약값 마진을 포기해야 하고, 시장가격에 따라 수익을 올리던 시행비도 받지 못한다.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이 고가의 의료 장비나 미용시술을 통해 막대한 비급여 수익을 내고 있는 것과 달리 정작 어린이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소청과는 거의 유일한 비급여 수익이 백신인 탓에 수익 창출에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국가필수예방접종에 새로운 병원균이 포함된다면 접종률 자체가 올라 손실을 메울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로타바이러스는 국가필수예방접종 지정 이전에도 접종률이 이미 80%가 넘는 ‘꼭 맞는 예방 접종’ 중 하나였다.

이런 이유들로 동네 소청과들이 낭떠러지로 몰리는 판국이다. 지난해 전 의료과목의 요양급여비용 총합은 18조 7,710억 원으로 이전 해보다 10.2% 증가했다. 그러나 이 중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연평균 진료비가 감소한 유일한 과목이 소청과이며, 진료비 규모를 수치화하더라도 5,134억 원(2021년)으로 전 과목 중 최하위이다.

지난 2021년 운영하던 소청과를 폐업한 후 현재 일반의로 근무하는 A씨는 “소청과 의사들이 경영난을 호소하게 되면 일각에서는 의사들이 돈벌이를 위해 아이들 목숨을 이용해 비싼 백신을 국가필수예방 접종으로 전환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여론을 호도한다”며 “어떤 의사가 더 많은 국민이 백신을 접종하는 것을 반대하겠느냐”고 호소했다.

이어 “국가필수예방접종 전환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라며 “적절한 보상이 동네 소아과가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17년 영유아 필수 예방접종 시행에 들어가는 의료인 임금을 연구한 자료의 결과에 따르면 당시에도 시행비를 최소 2만 6,923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분석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A씨와 같은 소청과 전문의들은 ‘폐업’이라는 낭떨어지로 끊임없이 몰리고 있던 셈이다. 이에 소청과의사회의 ‘폐과 선언’을 지지하는 개원의들이 대다수이다. 또 다른 개원의 B씨는 “4년간 많은 것을 포기하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과정을 밟아 병원을 설립한 것”이라며 “힘들게 소청과 전문의가 됐음에도 오히려 ‘일반의’ 간판을 달아야 병원을 유지할 수 있다면 전문의를 포기하고 ‘폐과’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며 소청과의사회의 결정을 지지했다.


앞으로 10년 혹은 5년 뒤는 물론 이와 같은 추세라면 1~2년 뒤라도 아이가 아플 때 진료할 의사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게 되는 현실이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흔히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우리 미래의 건강을 책임지는 소청과에 미래는 커녕 현재도 위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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