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사명감과 보람같은 낭만은 외과의사들에게 없다”

- 대한외과학회, 춘계학술대회서 ‘우리는 젊은 외과의를 왜 잃는가’ 토의
- 위험부담은 크고 높은 소송 두려움에 비해 낮은 보상이 원인으로 꼽혀
-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대책 마련이 시급”

외과 등 필수의료분야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보상이 필요하고, 보상 재원 마련을 위해 한방분야에 투입되고 있는 건강보험재정을 필수의료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현장에서 나왔다. 또, 젊은 의사들이 낮은 보수와 의료소송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필수 의료 분야를 기피하고 있다고도 분석했다.



지난 20일 대한외과의사회는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우리는 젊은 외과의사를 왜 잃게 되는가-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주길 바라는 점’을 주제로 정책세션을 진행해 이 같은 주장과 분석을 내놨다.

이날 ‘벼랑 끝 외과의사’를 주제로 발표한 순천향대부천병원 외과 김철중 전임의는 이제 더 이상은 사명감만으로 외과의사가 되는 길을 선택하기는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김 전임의는 “수련 난이도, 소송 스트레스, 수련 후 외과의사 삶을 종합하자면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 이라며 “(환자를 살린다는) 사명감과 보람으로 버텨온 오랜 세월이지만 후배들에게는 더 이상 이런 낭만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면 일반 직장인보다는 훨씬 많은 급여를 받지만 의사들 사이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며 “외과 수련 행위는 의과 내에선 힘들기로 수위에 들지만 정작 받는 급여는 전체 전문과 중 중간 정도 위치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김 전임의는 정부가 한방 분야에 투입되고 있는 비용을 필수의료 살리기를 위해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임의는 “지난 2021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기관 종별 요양급여 비용을 살펴보면 한방 의료 지출이 한 해 3조원 정도 된다”며 “3조원 정도 되는 재원을 필수의료 분야로 돌리는 방안이 뭘까 생각해봤는데 일생동안 단 한번도 한방 진료를 이용하지 않는 환자들을 고려해 보험을 의과와 한방으로 이원화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고 제안했다.

이어 “한방의료 중 80% 이상이 근골격계 질환이기 때문에 한방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국민 건강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고, 오히려 (한방 때문에)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보험 이원화를 통해 연간 3조원에 달하는 재원을 필수의료에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외과는 갈수록 3D(Difficult, Dirty, Dangerous)의 늪에 빠지고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후배들이 더 이상 3D 업종이 아닌 환자에게 헌신할 수 있는 외과의사로 거듭날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 전임의의 뒤를 이어서 ‘외과의사로서의 포부’를 주제로 발표를 이어간 세브란스 병원은 3년차 전공의 서연수 씨는 소위 MZ(밀레니얼 세대+Z세대)로 불리는 젊은 의사들을 위해선 외과 수련 환경이 변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서 전공의는 특히 외과 수련 3년제로 인해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한 상태로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며, 전공의 수련과 병원 시스템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맞춰 젊은 의사들도 전문성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외과의사로서 최선을 다해도) 돌아오는 보수가 적고 늘어나는 의료소송을 생각하면 (외과 의국을) 나가려는 젊은 의사들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환자를 살리고 싶어 외과를 선택했다가도 이런 이유로 포기하는 후배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종민 대표원장은 ‘봉직의에게 바란다’는 주제의 발표에서 봉직 및 개원을 염두에 두고 있는 외과 후배들이 직면하게 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조언을 건냈다.

김 원장은 “외과 전문의가 되면 바로 개원할지 봉직의로 근무할지 세부 전공을 살려 가치를 키울지 등 고민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며 “높은 급여를 보장받으면서도 당직 스케줄이 없는 곳을 바라는 것이 당연하지만 고용주 입장에서 외과의사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원장은 외과 봉직의들이 갈 수 있는 진로로 ▼전문의료기관 ▼신경외과와 정형외과 중심 종합병원급 의료기관 ▼검진센터 등을 꼽으며 한방병원과 사무장 병원은 절대 기피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문의료기관에 입사하면 인력이 넘치는 대학병원과 달리 의사가 직접 해야 하는 일이 많다는 것에 괴리감을 느낄 것”이라며 “귀찮거나 능력이 부족하면 환자를 전원시킬 수 밖에 없는데, 당연히 원장이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기관은 높은 임금을 제시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응급의료기관을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체 당직인력이 없고 급여 수준은 낮다. 외과를 소모품처럼 대하는 느낌이 들어 추천하지 않는다. 외과의사로서 성장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검진센터에 대해서는 “급여가 매우 낮다. 전임의 시절 2~3년 내시경을 꾸준히 했다고 해도 인정받지 못한다. 진료량이 많아야 하는데, (내시경 시술이) 빠르지 않으면 대접을 받지 못한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건강검진 수검률이 높기 때문에 자리가 많고 야간 당직 콜이 없고 오후 4시면 일과가 끝나기 때문에 삶의 질은 좋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외과의사로서 진로를 잘 선택하기 위해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수술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내과도 되고 영상의학과도 되고 때로는 원무과도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개원가에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원장은 ▼전공의 때부터 초음파에 대해 공부 ▼조직검사 익히기 ▼소화기내과 세부전문의 정도 수준의 내시경 실력 ▼기본적인 술기 마스터 ▼외과의사도 진료량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 등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최근 필수의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때 수가 가산이나 신설이 있어야 한다. 다만 이런 지원이 대학병원에 쏠려서는 안된다”며 “외과가 힘든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대학병원에 쏠리는 잘못된 의료전달체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외과 중심병원 경영 실제’를 주제로 발표한 진주제일병원 정의철 원장은 “(젊은 의사들이 외과를 기피하는 원인은) 결국 워라벨”이라며 “이 외 의료사고 노출과 형사책임 등에 대한 두려움도 신세대가 기피하는 원인”이라고 했다.

이어 “진료과목을 보고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필요한 수술과 응급의료 등에 지원과 투자를 집중할 필요가 있으며,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결국 보상이 이뤄져야 (필수의료 문제가) 해결된다. 제로섬게임 양상의 수가체계를 개선하고, 수도권 대형병원 환자 쏠림을 막아야 한다”며 “최근 대형병원들의 수도권 분원 설립은 필수의료 인력 부족을 불러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지역 병원장으로서) 외과의사들에게 양질의 워라벨을 제공하는 것에 부담이 있다. 지금은 (여러 방법을 통해) 부담하고 있지만 수가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다양한 분야 전문인력을 확보할 수 없다. 앞으로 더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보건복지부 임혜성 필수의료총괄과장은 중증 응급의료행위에 대해 충분한 보상이 되도록 큰 틀에서 제도를 개선 중이라고 밝혔다.

임 과장은 “정책이 발표됐지만 지금까지 없었던 개념을 추진하기 때문에 연구용역과 시범사업 등이 뒤따를 것”이라며 “현장에서 느끼는 부분은 더디겠지만 복지부 내에서는 필수의료정책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정당국도 적극 도와주려하고 있다. 더디긴 하지만 복지부 의지를 믿고 기다리면서 힘을 보태 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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