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응급의료 대책 발표에 현장선 “같은 대책만 반복” 지적

- “경증환자 받지 말라는 대책은 환자와 멱살쥐고 싸우라는 얘기”
- “응급수술체계 개선 없이는 응급실에서 대기하다 사망하는 환자 늘어날 뿐”

최근 응급실 수용 가능 병원을 찾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다 구급차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이어지자 당‧정이 합심해 해결책을 마련한 가운데 응급의료 현장에서 “같은 대책만 수년 째 반복하고 있다”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응급환자를 의무수용해도 응급처치 후 수술을 받지 못하면 달라지는 것은 구급차에서 사망하는 환자들이 응급실에서 사망하는 것 뿐이며,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증환자 응급실 이용 제한을 대책으로 제시하는 것도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31일 국회에서 ‘응급의료 긴급 당‧정 협의회’를 열고 소위 ‘응급실 뺑뺑이’로 물리는 응급의료시스템의 문제점에 관해 해결책을 논의했다.

이날 당정은 ▼환자 이송 출발 단계부터 빈 병상과 집도의 유무 확인이 가능한 원스톱 응급이송시스템 구축 ▼지역응급의료상황실 설치 후 환자 이송과 전원 지위 관제 ▼지역응급의료상황실을 통한 이송 환자 의무 수용 ▼권역응급의료센터 경증환자 진료 제한 ▼119구급대 통한 경증환자 이송 시 지역응급의료기관 이하로만 이송 ▼권역응급의료센터와 권역외상센터에 정보 관리 인력 추가 지원 ▼응급의료인력에 대한 추가 수당 지원과 특수수당 지급 등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에 응급의료 현장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대한응급의학이사회 이형민 회장은 “응급실 문제가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오늘 당‧정 합의 결과를 보면 같은 이야기만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문제에 대한 인식 자체가 잘못됐다. 예를 들어 복지부가 발표하는 예방가능한 외상 사망률이 18%라고 말하는데 미국과 OECD 등 다른 해외 주요국가도 15% 수준”이라며 현재 우리나라 외상외과 분야의 수준이 결코 낮지 않음을 강조했다.

이어 “물론 수치를 줄여나가는 것은 중요하지만 외상으로 인한 사망을 아예 없애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을 국민들에게 사실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데 국민 정서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로 대놓고 못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당‧정의 이런 태도가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응급의학과에 고스란피 피해로 돌아온다. 응급실 뺑뺑이 보도가 나올 때마다 현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라며 “이런 이야기가 계속 나오면 열심히 하자고 반응하는 사람은 없다. 회의감과 무력함에 버티지 못하고 다들 떠날 뿐”이라고 호소했다.

이 회장은 응급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권역외상센터나 상급종합병원에 응급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수술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회장은 “응급환자 문제 해결을 위해선 응급실 과밀화도 해결해야 하지만 응급의료체계 전반을 뜯어 고쳐야 한다”며 “현재 제대로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권역외상센터부터 개선해야 한다. 외상센터가 제 역할을 하려면 60명이 당직을 서면서 대기해야 하지만 외상외과의사 6명을 채용하지 못해 권역외상센터 지정에 탈락하는 곳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응급실을 찾지 못해서, 수술할 곳을 찾지 못해서 사망하는 환자들을 살리기 위한 방안은 이미 나와있다”며 “권역외상센터에서 환자를 수용하고, 정부는 기관을 충분하게 지원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기관에 경증환자를 다른 곳을 보내라는 이야기는 그만 했으며 좋겠다. 이 말은 의료기관보고 환자와 멱살잡고 싸우라는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경증환자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응급의학회 김원영 정책이사 역시 이번 당‧정이 내놓은 대책에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김원영 이사는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의무 수용하라는데, 응급실이 가득차 있어도 더 받아서 수술 전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문제는 그 이후 어딘가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수술문야와 중환자실에 대한 투자가 너무 부족한 현실에서 일단 응급실을 통해 병원에 환자만 밀어 넣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며 “그렇게 하면 길에서 사망하는 사고는 없어질지 몰라도 응급실에서 수술받지 못해 대기하다 사망하는 환자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는 한해에만 5만명의 외상환자가 발생한다. 이 환자 모두가 사망에 이르는 급박한 환자들은 아니다”라며 “응급의료 현장이 90점 정도는 되는데 100점을 맞으려 하니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응급의료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회적 합의도 이뤄져야 하고, 투자도 있어야 하는데, 현장에서 무언가 한두가지를 안해 문제가 발생한다고 치부하면 의사 입장에는 굉장히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김 이사는 문제 해결 방안 중 하나로 권역외상센터나 상급종합병원의 병상 하나를 비우게 하고, 이를 정부가 관리하는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병상을 여러개 비우면 부담이 되지만 한 병상 정도는 가능하다. 이렇게 40여 병상을 정부가 관리하면서 (중증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언제든 입원과 수술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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