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 정부, 의사 인력 과잉·의료비 급증에 의대 정원 감축 추진
- 지자체 “의사 부족해질 것” 우려에 반대... 의료계도 ‘신중론’ 제기
의대 정원 확대 문제로 시끌법석한 한국과 반대로 일본에서는 의과대학 정원 감축 문제로 논의가 오가고 있다. 의사 인력 과잉을 걱정하는 일본 정부는 정원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세운 가운데 지자체는 물론 의료계에서는 “더 뽑아야 한다”며 우려스러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의대 정원을 감축하겠다는 것은 꽤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방침이다. 지난 2018년 6월 발표한 ‘경제재정운영과 개혁 기본방침’에서 “향후 의대 정원 감축을 위해 의사 양성 방침을 검토하겠다”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 지난 2008년 ‘기본방침’을 통해 “가능한 빠르게 역대 최고 수준으로 의대 정원을 증원한다”고 한지 약 10년 만에 정원 감소로 돌아선 것이었다.
일본의 의대 정원은 지난 2008년 기본방침 발표 이후 꾸준하게 늘어왔다. 2006년 8월 일본 정부가 '새 의사 확보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의사 인력 부족이 심각한 10개 지자체에 입학 정원을 10명씩 추가 배정한 것이 시작이다. 의대 정원은 2007년 7,625명에서 2009년 8,486명으로 2년 만에 861명이 증가했다.
2010년대 지역 의사 부족 해결이 화두로 떠오르자 증원 정책 기조가 이어져 일본 81개 대학의 입학 정원은 지난 2019년 9,420명까지 늘어났다. 2020년 9,330명으로 다소 줄어들었지만 이후 다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2023년에도 전년도보다 10명 늘어난 9,384명을 모집했다.
지난 2019년 일본 후생노동청은 ‘의사수급분과위원회’를 통해 2022년도 이후 의대정원 감축 방안을 내놨다. 2020·2021년도는 예년 수준선에서 유지하고, 2022년도를 기점으로 2023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정원을 축소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의료계에 제시한 셈이다. 이 위원회는 일본의사협회와 일본병원협회, 전국 의대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자리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관련 논의가 미뤄졌지만 후생성 산하의 ‘지역의료구상과 의사확보계획 TF’는 2022년 8월 ‘2022년도 이후 의대정원과 지역전형’ 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의사 인력의 과잉이 예상되는 만큼 의대 정원 감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실시하는 ‘의사수급체계’ 2018년도, 2020년도 조사에 따르면 2028년 의사 수가 35만 명에 이르게 되며 이 해 공급과 수요가 교차하게 된다. 이 추계에 따르면 늦어도 2033년에는 의사 인력 공급이 수요를 상회하는 의사 공급 과잉 시대가 찾아온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에 따라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며 의대 정원 감축이 제기되는 요인 중 하나이다.
지난해 3월 일본 정부가 공개한 2023년도 정부 예산은 114조 3,812억 엔(약 1,063조 원) 중 약 32.2%인 36조 8,889억 엔(약 342조 원)이 사회보장비이다. 전년도인 2022년도보다 1.7%가 증가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의료비와 장기요양 비용의 증가에 따른 것이다.. 오는 2025년에는 의료비만 54조 9,000억 엔(약 51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의대 정원 감축’ 의지가 확고한 중앙정부와는 달리 일본의 지자체들은 정원 증원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역 간 의사 인력의 편차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후생성이 공개한 ‘의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2월 기준 지역별 인구 10만 명당 의료기관 근무 의사 수는 도쿠시마현이 338.4명으로 가장 많았는 것에 비해 사이타마현은 177.8명에 그쳐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이바라키현도 193.8명, 니가타현도 204.3명으로 전국 평균 256명에 한참 못미쳤다.
지난 4월 후생성이 지자체별 의사 인력 불균형 수준을 평가한 ‘의사분포 불균일 분포 지수’를 발표하자 하위 16개 지자체들 사이에서는 “지역에서 일할 의사가 여전히 부족하다”며 중앙정부에 의대 정원 감축 방침을 재고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전체적인 정원을 감축하더라도 의대 지역 전형 비중은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역 전형 선발자는 졸업 이후 9년동안 지자체와 의대가 지정한 지역 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한다. 지난 2021년 기준으로 전체 의대 입학자의 18.7%가 해당 지역 전형으로 선발됐다.
일본 의료계도 정원 감축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24년부터 시작되는 ‘제8차 의료계획’에 의대 정원 문제가 주요 의제로 올랐지만 지역·전문과 쏠림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의대 정원 감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일본병원협회는 지난 3월 분과위원회 회의에서 “인구당 의사수로 보면 크게 부족해 보이지는 않지만 일본은 극심한 의사부족에 시달리는 국가다. 의사 편중 대책에 앞서 제공 체제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며 “의료권 단위 논의는 전국이 일률적인 지표로 진행하기 보다는 지자체에 맡겨야 오류를 줄일 수 있다”고 지자체의 요구에 지지입장을 밝혔다.
전국의과대학협회 측은 "의대 정원을 일정 수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의사 인력 조정은 의대 정원이 아니라 "졸업시험이나 국가시험, 전문의 시험 단계에서도 조정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소아과학회 소아전문의제도 운영위원회 소속 위원도 "소아응급의료와 신생아 치료같은 세부 전문의까지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로서는 전체 소아과 의사 수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는 입장을 냈다.
이에 대해 후생성은 "지역·전문과 쏠림 문제를 고려하겠다"면서도 의대 정원 감축 의지는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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