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적인 여론 비난에 형사처벌까지 받는다... 당연한 필수의료 기피

- “의사 징벌하는 분위기 속 필수의료 현장 떠날 수 밖에”
- 현장에선 의사 진료권 보장 호소... “법적 안전 장치 필요”
- 신현영 의원, 무과실 의료사고 100% 국가책임 추진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의료사고에도 형사처벌을 받고 배상하도록 강요하는 ‘징벌적’ 사회 분위기를 개선하지 않으면 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 현상 해결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의사들은 모든 책임을 현장의 의사들에게 떠넘기기 전에 의사로서 가장 기본적인 진료권부터 보장해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7일 국회 제 1차 의료현안 연속 토론회가 ‘의료행위에 대한 징벌적 접근,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는가’는 주제로 열린 가운데 전문가들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의료 분쟁이 필수의료 위기를 심화하고 있다면서 법제도를 정비하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는 국회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주최했다.

발제를 맡은 대한의사협회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지금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들은 마치 ‘학폭’(학교폭력)을 당하는 것처럼 언론에 의해 ‘언폭’을, 사법부에는 ‘법폭’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라며 “중증필수의료 분야에서 사명감으로 일하던 의사들까지 의료행위를 징벌적으로 접근하는 사회 분위기에 떠밀려 의사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의료정책연구소는 한국의 의사 1인당 연간 기소 건수가 일본의 265배, 영국에는 895배에 이른다고 분석한 바 있다.

필수의료 현장에서도 의사의 진료권을 보장하고 국민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젊은 의사의 필수의료 분야 기피를 막을 수 없다고도 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김지홍 이사장은 의료에 대한 징벌적 접근이 소아 의료 위기를 격화시킨 주요 원인 중 하나라며 “환자의 권리는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의료 현장의 상식이 통하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우리 국민의 특성일 수 있으나 소아청소년 환자의 보호자는 걱정과 요구 사항이 커 의료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며 “지금 현장은 드러나지 않은 괴롭힘이 빈번하다. 젊은 의사들이 소청과를 기피하고 전공의가 부족한 이유 중 하나이다. 내년이면 전체 수련병원 30~40%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전무한 상태로 진료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이어 “의료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진료 우선순위를 결정할 권리를 의료기관이 가져야 한다. 지금은 환자에게 우선권이 있는 구조”라며 “진료 결과에 대한 법적 책임을 가리기 위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중재 기구도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응급의학회 최성혁 이사장도 의료 현장에서의 의사 권리 보장이 시급하다고 했다. 최근 당·정이 협의해 응급의료 긴급대책을 내놨지만 의료진에게 환자 진료 우선순위 결정권이 없는 상황이 비현실적이라고도 했다.

최 이사장은 “정부 대책이 작동하려면 경증 환자를 응급실에서 빼야 하는데 뺄 수가 없다. 국민 정서상 의사가 환자에게 오지 말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며 “진료 우선순위 결정에 대한 면책이 없으면 의사는 방어진료를 할 수 밖에 없다. 의료진이 환자 안전은 물론 의사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보장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법적 장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의료현장을 위한 ‘반의사 불벌죄 폐지법’(의료법 개정안) 제정도 촉구했다. 최 이사장은 “응급실 의료진은 계속 맞아가며 진료해야 한다. 이미 응급의학과도 소아청소년과처럼 지원율이 감소추세로 돌아섰다. 이런 법적인 부담이 가장 큰 이유”라며 “의사의 진료권과 안전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몰매만 치지 말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신현영 의원은 관련 법 제정으로 필수의료 위기를 해소하고, 의료진을 이런 상황으로부터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제정된 불가항력 분만의료사고 국가보상제 관련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 범위를 필수의료로 확대해 ‘필수의료 제정법’을 추진하고 ‘착한사마리아인법’(응급의료법 개정안)과 반의사 불벌조항 폐지도 성사시키겠다고 했다.

신 의원은 “모든 무과실 의료사고는 국가가 보상하도록 해 의료행위에 대한 징벌적 처벌의 대안으로 삼아야 한다”며 “착한사마리아인법 제정을 위한 소통과 설득을 통해 의료 분야에서 엄벌주의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가 무과실 의료사고를 배상하고, 필수의료 진로에 필요한 병상과 인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의무를 져야 한다”며 “중증·응급·소아 등 필수의료 분야에서 국민이 필요할 때 안전하게 진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의사와 환자가 신뢰할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이 진정 의료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 균형잡힌 제도 정비로 의료 현장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박미라 의료기관정책과장은 "필수의료는 물론 어떤 의료 영역이든 의료인이 소신을 가지고 전문 기술인 의료행위를 펼쳐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국민이 (의료인과 의료행위를) 신뢰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박 과장은 "의료사고 입증 책임 전환이나 충분한 배상을 위한 전제 조건 등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필수의료 붕괴라는 상황에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수립할 수 있다"며 "현장에서 느끼는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감을 정부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이를 완화하는 동시에 의료사고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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