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 갑질에 시달리는 소아과 의사들, ‘불합리한 요구에 성추행범 의심까지’

- 진료 며칠 후 검진 취소 요구하거나 특정 약, 처방 요구도... 정상적 진료에도 성추행 의심
- 저출산, 저수가 등과 함께 소아과 폐과, 이탈의 주요 원인으로 꼽혀

일부 영유아 부모들의 지나친 갑질이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소아과 의사들의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미 받은 검진을 취소해 환불을 요구하거나 정상적인 진료를 했음에도 이를 성추행으로 몰아 경찰에 신고하는 등 비상식적인 갑질이 이어지면서 소아과 의사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3일 의료계이 따르면 최근 서울의 한 소아과에서 4개월 아이를 데리고 왔었던 부모가 영유아 검진을 마치고 며칠 뒤 다시 찾아와 검진을 취소해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검진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영유아 검진은 통상적으로 20분 가량이 소요되지만 그 수가는 3만 원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국가 사업이기 때문에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금액은 0원임에도 불합리한 이유를 핑계삼아 이미 완료한 검진을 취소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실제 요구대로 검진을 취소하면 20여분간 인적, 물적 자원을 모두 투입하고도 수가를 받을 수 없게 된다.

현장의 소아과 종사자들은 이런 부모 갑질이 한두번 있는 일이 아니며, 더 심한 경우도 많다고 토로했다.

실제 SNS에 업로드된 비슷한 댓글을 살펴보면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그런 보호자는 우리 병원에 오지 않는 것이 낫겠다 싶어 그냥 취소해줬다”, “나도 당해봤다. 유명하다고 해서 와봤는데 유명세만큼 못 하다는게 취소의 이유”라고 황당해 하는 댓글들이 뒤를 이었다.

뿐만 아니라 검진 외 다른 갑질들도 다양하게 행해지고 있었다. 막무가내로 특정 약 처방이나 검사를 의사에게 해달라고 요구하거나 별다른 약 처방이 없을 때에는 진료비를 안 내고 그대로 귀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는 정상적인 진료를 하던 중 성추행을 했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아이들 중 염색체 이상, 호르몬 불균형 등으로 생식기 기형 문제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어 (생식기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그런데 그걸 성추행이라며 경찰에 신고를 당했다는 소아과 의사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런 갑질은 사실 현장과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행해지고 있다. 일부 극성 부모들은 특정 소아과에 대해 사실과 다른 악의적인 내용을 온라인 맘카페 등을 통해 퍼트려 소아과를 찾는 환자들의 발길을 뚝 끊기게 만들기도 한다. 대부분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기분 나빠서’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 같은 일부 부모들의 극성맞은 갑질들은 저출산, 저수가 등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사명감으로 버텨온 소청과 의사들이 줄줄이 현장을 이탈하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실제 개원가 소아과 전문의들이 주축인 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지난 3월 소아과 ‘폐과’를 선언한 데 이어, 최근 노키즈 학술대회까지 열어 소아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피부·미용·성인진료에 필요한 지식을 공유했다. 이미 의사회 회원 중 20%가량은 성인 진료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 의사들 역시 소아과 지원을 꺼리면서 전공의 지원율도 상반기 기준 지난 2019년 92.4%에서 올해 25.5%로 곤두박질 친 상황이다.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마상혁 과장은 “우리 사회에서 의사에 대한 불신이 점차 커져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결국 이런 식으로 소아과 의사들이 줄어들면 불편을 겪는 건 국민들이다. 살 수 있는 아이들도 살릴 수 없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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