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위 주최 토론회서 ‘조력존업사’ 전문가 의견 엇갈려
- 윤영호 교수 “의사조력 원하는 국민 계속 늘어.... 81%가 찬성”
- 김율리 박사 “경제적 문제로 조력자살 선택하게 될수도”
의사조력자살이 말기 환자의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연명치료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후의 선택지’가 아닌 남겨질 이들의 경제적 부담 등을 덜어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환자들이 호스피스완화치료 대신 더 쉽고 비용도 덜 드는 의사조력 자살을 택할 수 밖에 없도록 몰리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12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조력존엄사의 인권적 쟁점과 대안에 관한 토론회’에서 의사조력자살과 관련해 뜨거운 논란의 시작점이 된 이른바 ‘조력존엄사법’에 대한 전문가들의 토론이 있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는 호스피스완화의료가 가능한 질병이 제한되는 등 ‘웰다잉(Well-Dying)’이 제대로 실현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암 사망자의 23%만이 호스피스완료의료 기관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사망자의 6%에 불과한 수치이다.
윤 교수는 “웰다잉의 불평등으로 인권침해로 볼 수 있는 문제가 심각하다”며 “의사조력자살을 원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 의사조력자살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위스 비영리단체 ‘디그니타스’에 등록한 한국인은 2022년 기준으로 117명으로 아시아 국가 중 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12일 KBS·서울신문·케이스텟리서치가 발표한 설문 결과를 살펴보면 국민의 81%, 국회의원이 51%, 의사들도 50%가 의사조력자살 도입에 찬성했다”며 “대한의사협회는 그동안 원칙적인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자체 조사를 거친 후 다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의사조력자살 법제화와 호스피스완화의료 확대를 병행해 말기환자들의 웰다잉 선택권을 넓혀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웰다잉 문화 확산을 위해선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윤 교수는 “벨기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의사조력자살 실행 환자의 74%가 임종 전 완화의료를 이용했다. 미국의 오레곤주와 워싱턴주에서도 76%의 환자가 의사조력자살 전 호스피스를 통해 치료를 시도했다”며 “의사조력자살과 호스피스완화의료는 협조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말했다.
이어 “웰다잉 문화 확산을 위해 의사조력자살과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절감된 의료비를 기금으로 사용하면 된다”며 “또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인정하고 병원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확인을 의무화하는 등 자기 결정권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반면 도쿄대에서 사생학·생명윤리를 전공한 김율리 박사는 의사조력자살제도와 호스피스완화의료제도 활성화 병행을 해외사례를 통해 국내에 도입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김 박사는 “지난 2011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스위스 제네바의 한 대학병원은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한 이후 완화의료 의사를 2명에서 1.5명으로 줄였다”며 “완화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선 임상의의 헌신과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의사조력자살이 쉬운 해결책으로 인식되면 완화의료 제공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사조력자살이 환자가 선택 가능한 옵션이 된다면 보험이 적용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사실상 조력자살로 사망하는 비용은 입원치료비용보다 훨씬 더 저렴할 것”이라며 “어쩔 수 없이 치료 대신 조력자살을 선택하는 환자도 있을 수 있다. 윤리적 문제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의사조력자살이 도입되더라도 소수의 의사만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말기 환자가 적시에 처치를 맏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해외 사례를 들어 꼬집었다.
김 박사는 “미국 의사들에게 물었을 때 의사조력자살을 유효한 의료 옵션으로 승인하는 의견에는 절반에 가까운 49%가 찬성했으나 무조건 수행하겠다고 답했던 의사는 9%에 불과했다”며 “의사조력자살이 도입된 이후 소수의 의사만 이를 시행한다면 대기가 발생하게 된다. 명의를 찾아 대형병원으로만 환자가 쏠리는 현재의 의료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말기 환자의 의료 시설과 재정적 지원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서 의사조력자살이 선택 가능한 치료가 될 수 있는가”라며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고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나 그 방법이 반드시 의사조력자살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조력존엄사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 개정안)을 발의한 안규백 의원실 이정효 보좌관은 의사조력자살과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가 상호보완적으로 기능하도록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했다.
이 보좌관은 “법안은 대상자를 ▼말기환자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는 경우 ▼신청인이 자신의 의사로 조력자살을 희망할 경우로 한정한다”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호스피스완화의료로 안내할 수 있다. 향후 법안이 통과되면 호스피스완화의료 인프라 투자 등 제도적으로 보완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법안 부칙에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하도록 돼 있다”며 “한국 의료 시스템이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는 만큼 의료계에서 관련 가이드라인과 프로토콜 개발, 의료진 간 협력을 강화 등 충분히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의원실도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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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훈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