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자원·배후진료능력 부족 등 응급실이 ‘수용불가’할 수 밖에 없는 현실
- “의사에게 책임을 묻기 전 시스템 개선이 우선시 돼야”
‘응급실 뺑뺑이’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병원이 응급환자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정부 정책이 나온 가운데 의사들이 이에 반발하고 있다. 응급의료체계가 매우 열악한 상황 속에서 정부가 모든 책임과 의무를 응급실 의사들게에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경증환자들도 119 구급차를 타고 큰 병원으로 몰리면서 중증응급환자의 최종 치료를 담당해야 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는 환자 과밀화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배후 진료 능력과 응급실 의료진의 부족 등도 응급환자를 무작정 수용하는 것을 망설이게 만드는 요소다.
때문에 응급의료 현장에서는 ‘수용거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불가’라고 지적한다. 응급환자를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법적 책임을 묻고 환자를 강제 수용한다면 결국 ‘악순환’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대구 응급실 사건으로 4개 응급의료기관이 행정처분을 받고, 최초 진찰한 전공의는 피의자 신분으로 기소될 위기에 처한 사례를 들며 차라리 ‘전화를 받지 말아야 하느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응급의료 자원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 ‘수용거부’를 비윤리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환자의 안전을 위한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의료적인 판단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인력과 시설 부족 상황에서의 환자수용이 오히려 ‘비윤리적’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지난 16일 서울시 용산드래곤시티 호텔 ‘응급환자 이송거부금지에 따른 문제점과 해결책’을 주제로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응급실 의사들은 우리나라 응급의료 현실을 ‘재난상황’이라고 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중증응급환자의 최종치료를 맡아야 할 권역응급의료센터가 과밀화된 상황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응급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포한국병원 응급의학과 김재혁 과장은 “우리나라 응급의료 시스템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최종 치료 병원인 권역센터들이 대부분 과밀화 돼 있다는 점”이라며 “이로 인해 지역센터 등에서 중증응급환자를 받았을 때 전원이 안 되는 문제가 가장 크다”고 말했다.
이어 “가령 우리병원에 심장내과가 없는데 흉통 환자가 온다고 구급대원에게 연락이 왔다고 해보자. 그 환자에게 심근경색 과거력도 있고 타 병원에서 시술도 받았다고 한다. 심근경색일 가능성이 높은데 내가 환자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전원을 해야 하는데 권역센터에서 못 받는 상황이라면 고통스러워 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전체 병상 수는 부족하지 않지만 환자들이 일부 기관으로 집중되면서 제대로 순환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무조건 더 큰 병원, 이름 난 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는 시스템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환자 수용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의료자원과 배후 진료 능력 부족도 꼽힌다.
응급의학의사회 김홍재 총무이사는 “적절히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만 된다면 응급실에서 환자를 다 받을 수 있을 텐데 지금 상황은 환자를 받게 되면 전원이 필요해도 못하는 것”이라며 “대형병원 응급센터에 응급실 의사가 1명이라면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 총무이사는 KS병원 응급의학과 원장이다.
김 총무이사는 “권역센터도 한 타임당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2~3명 정도다. KS병원도 24시간 중 15시간 이상은 혼자 근무하고 피크 시간 대 2명이 근무한다. 이런 상황인데 전원 해야 하는 환자가 생기면 환자도 봐야 하는데 전원 전화를 돌려야 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환자가 괜찮다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이송도 못하고 환자 상태가 나빠지면 대부분 보호자들은 ‘왜 진료도 안 되는데 치료 하겠다고 환자를 받은 거냐’며 민원을 넣고 소송을 건다”며 “이러니 처음부터 환자를 안 받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도 탄식했다.
때문에 응급실들이 중증응급환자 수용거부하는 것을 단순하게 비윤리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재혁 과장은 “수용거부가 과연 비윤리적인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며 “손가락 절단 환자가 119에서 연락이 온다면 배후 진료과가 없는 우리 병원이 아닌 한 번에 치료할 수 있는 병원으로 가는 게 유리한데 내가 수용하는 게 맞을까. 어쩌면 환자를 수용하는 게 비윤리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이 환자에게 무엇이 가장 유리한 것인지 판단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며 “정부에서 수용 곤란고지에 대한 정당한 사유를 매뉴얼로 만들고 있는데 결국 작동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정부가 중증응급환자 수용을 하지 못하는 환경을 개선하고 싶다면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증응급환자 수용한 의료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면제 시켜주는 것”이라며 “이런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 응급의료 시스템이 먼저 개선돼야만 한다. 문제가 생길 게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책임지라고 하면 현장 응급의학 의사들이 떠나게 되는 악순환을 겪게 될 것”이라고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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