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 문제’ 응급의료체계 붕괴, ‘심폐소생술’ 나선 선진국들

- 코로나19 여파로 응급의료체계 전 세계적으로 붕괴 이어져
- 한국과 비슷한 日, 업무범위 손보고 실시간으로 병상 시스템도 확충
- 英, 응급실 과부화 막기 위해 2조원 규모 추가 재정 투입... ‘응급실 회전율’ 높인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한 뒤 직격탄을 맞고 폐허나 다름없이 붕괴된 응급의료체계를 다시 되살리고자 각국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응급처치를 넘어 병상 및 인력부터 이송체계 전면 재정비 등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가 주목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한국에서도 최근 지적되고 있는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옆나라 선진국 일본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일본에서는 이를 ‘응급자 돌려막기’라고 부른다. 일본 정부에서도 이들을 공식적으로 ‘응급이송곤란’으로 분류한다. 환자 이송을 거부한 병원이 3곳 이상, 30분 이상 이송처를 찾지 못한 응급환자가 여기에 분류된다. 지난 1월에도 심근경색 환자가 도쿄 병원 10곳을 떠돌다 이송되지 못하고 숨지는 일이 있었다.

이송곤란이 벌어지는 이유도 한국과 매우 유사하다. 빈 병상은 없고, 전문 의료진은 부족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의 코로나19 병상 확보로 인해 일반 진료 기능을 축소하면서 더욱 상황이 악화됐다. 지난 8일까지 일본 소방청의 집계에 따르면 직전 7일동안 일본 전국에서 응급이송곤란이 총 4412건이 발생했다. 그나마도 코로나19의 약세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교해 36%가 감소한 수치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들은 응급환자 이송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10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오고 있다. 지난 2010년 ‘응급환자 수용체계 강화 사업’을 시작으로 여러 정책을 마련해 시행해오고 있다. 2014년부터는 지역 소방기관마다 전속 의사를 배치하도록 했고, 장시간 이송처를 찾지 못한 환자를 수용한 병원은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재정 지원금도 받는다. 환자가 잠시 거쳐간 병원도 포함된다.

또, 개선중인 인력정책의 핵심은 바로 업무 범위를 조정하는 것이다. 의사와 간호사 몇 명이서 응급실 모든 업무를 감당하고 있는 현행 구조를 개선하고자 함이다. 이를 위해 지난 2021년부터 법을 개정해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를 확대해 병원 전 단계는 물론 응급실에서도 의사의 지시가 있다면 응급 처치가 가능해졌다. 여기에 더해 의료기관들에 응급구조사 채용을 장려하고 있다.

후생노동청 산하의 ‘응급의료 분야 이상적인 의료전문직 배치 연구회’는 간호 시스템을 강화해 환자 분류와 응급 이송을 효율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응급실 전문 간호사 수급 방안도 모색 중에 있다.

일본 정부가 공들이고 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서 돌파구를 찾는 지자체도 있다. 태블린 PC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병상 현황을 확인 가능하고 이송 업무하는 처리 방식이다. 이동 중에 진료과목과 증상, 시설별로 이송 가능한 의료기관을 검색할 수 있다. 정부 응급의료정보시스템(EMIS)을 기반으로 하며, 환자 정보도 이를 통해 전송한다.

2010년대부터 응급현장에 태블린 PC를 도입한 시가현은 평균 이송시간이 1분 단축됐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이타마시의 경우 지난 2022년 응급곤란사례가 31~38%가량 감소했다고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수도인 도쿄와 수도권인 가나가와현도 이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0년 3월 의료기관 정보지원시스템(G-MIS)을 개편해 전국 3만 8000개 의료기관 병상 현황을 제공하고 있다. 의료기관별 병상 현황과 수용 대기 환자 정보를 공유가 가능하며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지역의사회와 소방기관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여기에 전체 응급실 병상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경증 환자들의 응급실 이용률을 낮추기 위한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경증 환자의 경우 119 대신 응급상담센터인 7119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응급간호사·상담사와 소방청 담당자가 24시간 전화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도쿄처럼 지역의사회와 연계해 의사들이 돌아가면서 상담을 해주는 곳도 있다. 응급 증상을 스스로 점검하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인공지능(AI) 응급 상담 서비스를 선보인 지자체도 있다.

응급의료체계 재정비에 나선 영국의 경우에는 무엇보다도 병상 회전율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내내 응급실 병상과 인력 부족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영국 의회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응급실 치료를 받기 위해 12시간 이상 대기한 환자가 지난해 8월 1달동안 13만 3000명에 육박했다.

이에 영국 보건사회부는 지난 1월 ‘긴급·응급의료 서비스 복구계획’을 발표해 2024년 3월까지 응급실 환자의 75%의 체류 시간을 4시간 이하로 떨어트리겠다고 밝혔다. 빠른 퇴원을 위해 지역사회 돌봄 인프라 확충에 16억 파운드(약 2조 7000억 원)를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환자가 신속하게 퇴원하도록 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응급실 대기 시간을 단축하겠다”고 강조했다.

응급실 ‘문지기’(게이트 키퍼) 기능도 강화한다. 지역사회 신규 응급의료기관 설립에 1억 5000만 파운드(약 2500억 원)를 투자하고 구급차 800여대도 추가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지역 내 의료 이용을 늘려 병원 응급실 이용 환자를 언제하겠다는 것이다.

응급의료인력 확보 계획도 마련했다. 은퇴한 의사 등이 의료진에 복귀할 경우 더 유연한 근무 조건을 보장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지난 6월에는 15개년 장기 인력 계획을 공개하고 의료종사자 교육 및 수련기관을 사상 최대로 확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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