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과, ‘응급실 뺑뺑이 법적 책임 독박’ 직격탄... 전공의 지원율 ‘역대 최저’

- 전국 응급의학과 187명 모집 중 152명 지원에 그쳐... 지원율 81%
- 정원 모집 실패 병원도 65곳 중 10곳... 비수도권 극심
- “후기 모집까진 기다려봐야 하지만 이제 바로 정부가 원하는 ‘낙수효과’” 비판

결국에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는 모양새다. 소위 ‘응급실 뺑뺑이’ 사건으로 인해 응급실의 의무가 강화되고 여기에 반대로 처벌받을 위험은 더욱 높아지면서 응급의학과를 전공하겠다는 의사들의 수가 급격하게 줄었다. 2024년 전국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은 81%에 그쳐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날까지 모집된 2024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주요 수련병원 75곳 중 응급의학과를 배정한 병원은 총 65곳이었다. 이들은 총 187명을 모집했으나 지원자는 81% 수준인 152명이 그쳤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은 지난 2021년도 101.8%, 2022년 98.8% 등 정원을 초과하거나 조금 미달되는 수준이었으나 작년을 기점으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2023년 85.5%를 기록하며 13%p나 급락했고 이번에 더 낮아지며 역대 최저치를 갱신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은 수도권 지역보다 비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극심하게 나타났다. 수도권 수련병원들은 총 109명 모집 중 92명이 지원해 84.4%를 기록했으나 비수도권 지역은 78명 모집에 59명만 지원하며 76.5%에 그쳤다.

또 모집에도 단 1명의 지원자도 없었던 수련병원들도 10곳이나 있었다. 강북삼성병원, 광명성애병원, 동국대일산병원, 일산백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원광대산본병원, 제주한라병원, 중앙보훈병원, 춘천성심병원, 동탄성심병원 등은 지원자가 전무했다.

적은 지원자들 사이에서도 빅5병원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빅5병원들에 배정된 응급의학과 전공의 정원은 총 35명 모집에 31명이 지원했으나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병원은 152명 모집에 120명에 그쳐 78.9%를 기록했다.

빅5병원 사이에서도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삼성서울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은 정원보다 많은 지원자가 몰려 각각 지원율 125%, 116.7%에 육박했으나 가장 많은 정원을 배정받은 가톨릭중앙의료원의 경우 11명 모집에 10명이 지원하며 미달되어 아쉬움을 삼켰다.

반면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은 정원에 훨씬 미치지 못하며 체면을 구겼다. 서울대병원은 응급의학과 전공의 정원 8명을 모집했으나 2명 지원에 그쳤고,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6명 모집에 지원자 3명이 전부였다.

다만,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의 응급의학과 전공의 미달은 시각을 달리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수도권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A교수는 “시스템과 환자군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수련과정도 다를 수밖에 없다. 중증환자가 많은 게 장점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4년 내 암 환자만 보다가 나올 수도 있다. 4년 내내 수련을 받아야 한다면 그런 측면에서는 (수련에) 아주 적합하다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역대 최저 지원율 사태가 사실상 예견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법적 분쟁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이들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3월 대구에서 벌어진 응급실 뺑뺑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최초 진찰을 했던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오랫동안 받기도 했고, 지난 8월에도 응급의학과의사가 전공의 시절 대동맥박리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를 오진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 받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응급실 뺑뺑이 방지 대책으로 응급환자 수용 곤란 고지 기준을 설정해 병상이나 의사가 부족하더라도 강제적으로 수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기피가 극심해졌다는 분석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전공의들이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것들 중 하나가 병원 스태프들의 삶 모습이다. 내가 지원하는 수련병원 스태프들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지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응급의학과 지원율은 후기 모집까지 더 기다려봐야 한다. 다른과를 지원했다가 떨어진 전공의들이 후기 모집에 지원하는 경우도 꾸준히 늘고 있다”며 “이게 바로 정부에서 원하는 ‘낙수효과’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이 회장은 응급의학과 1년차 전공의들의 중도 포기율 상승이 전공의 지원율 하락만큼이나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응급의학과 지원률 하락은 심각한 문제지만 사실 중도 포기율 상승이 더 큰 문제”라며 “코로나19가 지나면서 응급의학과 1년차들의 중도 포기율이 10%를 넘고 있다. 미국은 응급의학과 전공의 중도 포기율이 1%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필수의료는 의지가 있는 의사들이 해야 한다. 억지로 정원을 늘려 꾸역꾸역 들어오는 이들이 평생 버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버티고 참을 수 있는 힘은 결국 응급실 의사로서의 직업 만족도와 자부심”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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