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전문의 대거 사직에 ‘폐업 위기’

- 순천향대천안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전문의들 대거 동시 사직, 휴직 예정에 운영 난항
- 전문의 7명 중 정상진료 가능한 전문의 1~2명 뿐
- 개소 8개월 차 세종충남대병원 ‘난항’... “이미 해결책 늦었다”

필수의료의 의료인력 공백이 갈수록 심화되어 우려되던 여러 문제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국내 1호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인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가 전문의들의 공백으로 인해 ‘존폐 위기’에까지 몰린 상황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년간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으나 제대로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했고, 이미 늦었다는 지적이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365일 24시간 전문의가 상주하며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오던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가 7년만에 전문의들의 대거 사직, 휴직을 고려 중인 탓에 존폐 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7명의 전문의 중 1~2명을 제외한 다른 전문의들이 대부분 사직이 확정됐거나 휴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유독 구성원들간의 단합이 잘 이뤄지던 병원이었다. 소아과는 십수년 전부터 인력 공백에 시달려왔으나 선후배 사이였던 이들은 결혼이나 출산, 휴직 등 개인 사정으로 인해 팀원 중 일부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휴가를 미루거나 취소하는 등 서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왔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격리에 들어갔을 때에도 같은 방식으로 이겨내기도 했다.

이들은 대체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불평없이 센터로 밀려오는 환자들을 묵묵히 진료했다. 그렇지 않아도 소아응급 업무를 서울에 거주중이었던 전문의 대부분들이 장거리 출퇴근까지 감수해가며 고된 소아진료를 이어왔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도 소아응급센터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 서로 마음이 맞는 팀원들이 있어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소아진료과 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이같은 시스템에도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인력난이 전국적으로 극심해지면서 주변 소아응급환자를 받는 병원이 거의 없다시피 되어버린 탓에 중부권역은 물론 타지역에서도 환자들이 대거 몰려들기 시작했다.

환자는 늘었지만 병상이 부족해 입원이 불가능한 경우도 더 많아졌고, 전원을 받아주는 병원을 찾기 위해 하루에도 30통~40통씩 전화를 돌려야 하는 날들도 많아졌다. 환자가 늘어난 만큼 중환자 수도 늘어 일주일에 심폐소생술을 1~2번 실시하는 일상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병원에서 근무한 한 전문의는 “처음에는 중증환자일수록 ‘올 곳이 여기 밖에 없구나’하고 진료를 했다. 그러나 매주 그런 일이 생기니 우리도 조금은 무서워졌다”며 “특히 최근에는 병원에 도착한 이후 잘못되면 아무리 가망이 없었다고 한들 기본이 소송까지는 이어지는 분위기 아닌가. 다들 가정이 있는 마당에 더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결국 이들은 지친 육체와 걱정에 정든 일터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근무 의사들은 ‘우리가 이렇게 떠나면 아픈 아이들이 이제 어디로 향해야 하나’하는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가 운영에 난항을 겪기 시작하면서 같은 중부 권역에 위치한 세종충남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역시도 더 많은 환자를 수용해야 하는 위기에 놓이게 됐다.

충남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도 올 4월 전문의 6명으로 개소했으나 한 때 4명까지 인원이 줄었다가 풀타임 1명, 파트타임 1명의 전공의를 최근 모집해 6명을 겨우 맞춰 운영해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순천향대천안병원의 센터 상황이 악화되자 경증환자는 물론 중환자까지 충남대병원으로 몰려들면서 현재 인력들도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 측은 당장 센터 운영을 축소할 계획은 없지만 이미 사직을 이야기 하거나 고민을 털어놓는 전문의들이 있어 언제 운영에 차질이 생길지 미지수다. 인력난도 인력난이지만 중환자를 받더라도 배후의 진료를 담당해줄 의료진 수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서정호 충남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장은 “중환자를 받고 싶어도 해결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보니 받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가령 수술을 할 수 있는 소아외과 전문의가 없다거나 소아 영상을 보는 전문의가 없는 등 배후 진료가 받쳐줄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의사들은 사실 전국적으로도 몇 명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경증환자들이 몰려오는 점도 큰 어려움 중 하나이다. 경증환자가 지나치게 많이 몰려드는 탓에 정작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을 우선해서 진료하기 어려워지고, 이들을 우선 진료했다가 경증환자 보호자들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오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기 때문이다.

서 센터장은 “물론 경증환자들도 돌봐야 하지만 센터의 1차적인 목표는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것”이라며 “물론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보호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몸이 안 좋아 보이면 응급한 상황이라고 생각해 응급실로 오시는 것이겠지만 그런 환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작 촌각을 다투는 응급 중증환자들을 볼 수 없게 된다. 응급한 환자들을 보느라 경증환자들을 돌보지 못해 컴플레인도 많아지니 참 힘든 부분”이라고 털어놨다.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의료진들이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곳이다. 이 곳을 떠나려는 이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고, 한계라는 단어가 그들의 입에서 수도 없이 나오는 상황을 더는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의료 전문가들의 일변된 요구다.

서 센터장은 장기적인 대책도 필요하지만 현재 당장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단기적인 재정 지원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 센터장은 “현재 정부는 의사 수에 맞춰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물론 이 마저도 의사의 연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간호사나 다른 지원인력에 대한 지원은 일체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며 “수가도 올려야겠지만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기본적으로 적자가 계속 발생하는 곳이라 수가 인상만으론 해결하기 어렵다. 의사직 외 다른 직역들의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이미 늦긴 했다”며 “고의적인 의료사고가 아니라면 형사처벌을 면제해주고, 동네 소아청소년과 의원들이 적절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수가 체계도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이 일부러 아이들을 진료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주셨으면 한다. 민사적으로는 다툼이 있을 수 있지만 형사소송으로 이어져 법정 구속을 당하고 징역형을 내리는 것은 문제가 크다”라며 “의사 1~2명이 근무하는 동네 소아과 의사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소아 의료이용의 90% 이상이 경증 환자이기 때문이다. 소아과 의원들이 각 동네에서 편의점처럼 많이 운영되고 환자들 중 중중인 아이들만 대학병원으로 와서 진료를 받으면 가장 이상적인 소아진료체계가 구축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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