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친윤’으로 불리고 있는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한 것에 이어서 김기현 전 대표도 이어서 사퇴하게 되면서 총선을 4개월 앞둔 상황에서 여권의 정치지형이 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당선을 이끌어왔던 ‘친윤’이 물러서고 그 자리엔 ‘찐윤’으로 불리는 신진 세력들이 메울 전망이다. 총선의 공천 시기와 큰 흐름의 변화가 맞물리는 국면으로 여권에선 “이런 움직임이 내홍의 불씨가 될 수 있겠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4일 윤 대통령과 김 전 대표는 최근 김 전 대표의 ‘대표직 유지’와 ‘지역구(울산 남을) 출마’ 문제를 놓고 평행선을 달렸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인요한 혁신위원회의 ‘주류 희생’ 기조에 맞춰 김 전 대표가 대표직은 유지하되 지역구는 불출마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반면, 김 전 대표는 대표직 사퇴를 통해 혁신 의지를 보인 뒤 지역구에 출마해 총선 이후 국회에서 윤석열 정부를 뒷받침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여권 관계자는 “김 대표가 계속해서 자기 뜻을 굽히려 하지 않자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이 의견을 좁혀가려는 과정도 있었다. 김 전 대표는 ‘대표직 유지-지역구 불출마’를 하게 되면 총선 공천관리위원회를 구성할 때 대표로서 어느 정도 운신할 공간을 갖기를 원했다.
그래서 특정 인사를 공관위원으로 넣는 문제에 대해 용산 측에 의견을 전달했으나 용산 측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게 여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결국 용산 측은 김 전 대표가 ‘단순 관리형 대표’ 역할만을 해주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의 한 축인 장제원 의원이 지난 12일 전격적으로 불출마 선언을 한 것도 김 전 대표가 더욱 코너에 몰리게 된 계기가 됐다. 여권 관계자는 “김 전 대표는 결국 대표로서의 역할 공간이 없다고 보게 됐고, 결과적으로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해 대표직을 던지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김 전 대표가 페이스북으로 전격 사퇴를 하기 직전 이준석 전 대표를 만난 것도 예사롭지 않게 보는 시선이 많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누가 먼저 만나자고 했고, 언제 만나기로 정했는지를 다 떠나서 한창 민감한 시점에 김 전 대표가 이 전 대표를 만나 거취 문제를 논의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신호 아니겠냐”며 “좋은 감정으로 흔쾌히 사퇴한 건 아니라는 걸 나타내는 행동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김 전 대표의 원만치 않았던 사퇴 과정, 그리고 친윤 핵심으로 꼽히는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이른바 윤석열 정부 ‘개국공신’의 쇠퇴를 상징하는 장면이란 평가가 나온다. 두 사람은 지난 대선 당시 각각 원내대표, 캠프 상황실장을 맡아 보수 진영의 정권 탈환을 앞장서 이끌었다. 특히 윤 대통령 당선 뒤 당선인 비서실장을 맡은 장 의원은 정권 초기 명실상부한 여권의 2인자로 통했다.
장 의원과 함께 원조 친윤으로 불리는 권성동 의원 역시 험지 출마 또는 불출마하라는 이른바 ‘희생’ 압박을 받고 있다. 권 의원은 대선 경선 당시 캠프 종합지원본부장을 맡아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안착을 도왔다.
윤 대통령 당선 초기엔 원내대표로 선출돼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올해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권 의원은 핵심 주류라는 평가를 받지 못했고, 이후 지역구에 주로 집중해왔다. 그래서 “권 의원은 친윤에서 다소 멀어진 지 오래됐다”는 게 당내 중론이다.
권 의원과 함께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을 이끌었던 정진석 의원, 대선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주호영 의원도 희생 압박을 받고 있다.
소위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던 인물 중 현재까지도 친윤 주류로 활동하는 인물은 직전 사무총장을 지낸 이철규 인재영입위원장이 사실상 유일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에서 여전히 윤심(尹心)을 가장 잘 아는 인사는 이철규 위원장”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개국공신이 쇠퇴하는 상황에서 신진 세력으로 떠오른 인사들은 ‘찐윤’으로 불린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처럼 이미 대중적 인지도가 있거나 김은혜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처럼 국회의원 경력이 있는 인사가 아닌 여의도에 새로 진입하려는 정치 신인을 주로 지칭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부산 수영 출마가 거론되는 주진우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이다. 검찰 출신인 그는 윤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는 용산 참모로 통한다. 강명구 국정기획비서관(경북 구미을), 김보현 전 부속실 선임행정관(경기 김포갑), 김성용 행정관(서울 송파병), 김인규 전 행정관(부산 서-동) 등도 같은 범주다. 이미 당협위원장으로 뛰고 있는 인물 중에서도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후배이자 사법연수원 동기인 고석 변호사(경기 용인병) 등 찐윤으로 불릴 만한 인사가 상당수다.
당내에선 “윤석열 정부 중·후반부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 국정철학을 이해하는 인사의 원내 진입이 필요하다”는 데까지는 공감대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진입로가 친윤의 희생을 토대로 뚫리는 데 대해선 부정적 시선이 상당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선 때 피땀 흘려 뛰어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더니, 공이 높을수록 오히려 매를 더 세게 맞는 형국”이라며 “도와준 사람을 쉽게 내치면 앞으로 누가 대통령을 위해 발 벗고 나서겠느냐”고 말했다.
게다가 찐윤이 대거 서울 강남권이나 영남 지역 등 보수 진영의 전통적 강세 지역에 출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도 논란거리다. 희생을 종용받는 기존 현역 의원들과 대비돼 향후 공천 과정에서 당내 분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익명을 원한 보수 진영의 원로 정치인은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과 당 지지율이 30% 초·중반에 머무는 상황에서 신진 세력이 기존 현역이 버티는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면 아군끼리 싸우게 된다”며 “현재 친윤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조차 비주류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28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예고한 ‘김건희 특검법’이 여권 내홍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준석 전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특검법 거부권을 행사해도 민주당이 국민의힘의 공천 탈락자가 나오는 시점 이후에 재의 안건을 처리할 수 있다”며 “특검법이 공천이란 일정과 맞물려 상당한 장애물로 동작할 수 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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