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정지 부당 판결, 대법원에서 패소해... 반전된 원인은

- 대법원, 복지부 처분 취소한 원심 파기환송
- 수기 급여 대장 폐기에 업무정지 1년 처분
- "서류 폐기 이례적…의사가 이유 증명해야"

수기를 통해 따로 관리하고 있었던 진료비 수납 내용을 제출하지 않아서 결국 업무정지 처분까지 받았던 의사가 대법원으로 간 끝에 패소하였다. 앞서 말한 처분들이 부당하다고 본 하급심과는 다르게 대법원의 판단은 보건복지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대법원에서는 최근 의사 A씨가 제기했던 업무정지 처분 취소 청구를 받아들인 원심을 깨뜨리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올려보냈다.

소송을 제기한 의사 A씨는 지난 2016년 8월부터 B 피부과 의원을 운영해 왔다. 지난 2018년 10월 복지부는 진료비 과다 청구 민원으로 B의원 현지조사에 들어가면서 우선 총 14개월분 요양(의료)급여 관계 서류를 제출하도록 했다. B의원은 진료기록부를 비롯해 본인부담금 수납대장(진료비 계산서)과 신용카드 매출 전표 등을 냈다.

복지부는 B의원이 진료비 수납 내역을 전산 외 수기 형식으로도 작성해 온 사실을 알고 이 수기 '일일마감표' 제출도 요구했다. 일일마감표는 B의원 비급여 항목 중 레이저나 스킨케어처럼 전산 코드가 없는 항목의 환자별 수납 내역을 수기 기재한 서류다. B의원은 조사 당일에는 "이미 폐기해서 낼 수 없다"고 답했으나 이후 14개월분 가운데 78일분을 제출했다.

복지부는 의사 A씨가 제출 명령을 위반해 본인부담금 수납대장 서류 일부만 냈다면서 2020년 3월 5일 자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 1년 처분과 11일 자 요양기관 업무정지 1년 처분했다.

이에 불복한 의사 A씨는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일일마감표는 본인부담금 수납대장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제출 명령 위반이 아니며 이로 인한 업무정지 처분도 지나치다고 했다. 의사 A씨는 "일일마감표는 일부 순수 비급여 진료 항목에 대해 수기 입력이 편하고 환자 현황과 매출 통계 목적으로 별도 관리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따라서 다른 제출 서류와 달리 일일마감표는 "작성·보존할 의무가 없다. 폐기하지 않고 남은 일일마감표는 애써 찾아내 제출까지 했다"면서 "일일마감표 일부만 제출한 것을 본인부담금 수납대장 제출 명령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행정 소송에 앞서 복지부가 A씨를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 위반으로 형사 고발했으나 검찰은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했다. A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1심과 항소심(원심) 모두 A씨 청구를 받아들여 복지부에 업무정지 처분을 취소하도록 했다.

1심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일일마감표 자체는 본인부담금 수납대장에 포함되지만 복지부 처분이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 역시 일일마감표도 본인부담금 수납대장으로 제출 대상이지만 이 가운데 일부만 냈다고 해서 제출 명령 위반으로 간주하고 업무정지 처분을 내린 것은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사 A씨가 제출 명령 당시 미제출 서류 부분(일일마감표)을 소지하고 있었는데도 (조사 방해 목적으로) 서류를 폐기·멸실했거나 또는 제출 명령이 나오리라 예상하고 (미리) 폐기·멸실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복지부 주장대로 은폐가 목적이었다면 "조사 대상 기간은 물론 그 이후 일일마감표까지 전부 폐기하고 다른 서류도 조작·은닉하려 했을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서류 보존의무 위반과 제출의무 위반은 구별해야 한다. 보존의무를 위반했더라도 만연히 제출의무 위반까지 인정하면 부당한 결과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의사 A씨는 일일마감표까지 보존의무 대상이라고 인식하지 않아 "그 전부를 체계적으로 작성 보존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웠다"면서 "제출의무 위반을 탓할 수 없는 경우 내지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로 볼 여지가 상당하다"고 했다.

그러나 복지부 상소로 열린 상고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대법원 재판부는 원심이 '서류제출 명령 대상과 급여 관계 서류 부존재 경우에 대한 증명 책임'을 다룬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업무정지 처분이 적법한지 증명 책임은 원칙적으로 이를 주장하는 처분청(복지부)에 있다. 그러나 그 적법성에 대해 합리적으로 수긍 가능한 정도로 증명됐다면 이와 상반되게 예외적인 사정이라는 주장과 증명에 대한 책임은 상대방(A씨)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일일마감표를 비롯해 급여 관계 서류 보존 행위는 "요양기관의 지배 영역 안"이고 "보존의무 기간 내에 임의로 서류를 폐기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했다.

B의원 일일마감표는 "다른 진료비 수납 내역 서류에는 없는 비급여 진료비 수납 내역이 일부 포함"돼 있고 B의원이 제출한 전산상 수납 내역과 "실제 카드 전표 내용에 불일치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B의원이 현지조사 당일에는 일일마감표를 모두 폐기했다고 밝혔으나 현지조사팀 요구가 이어지자 78일분을 제출한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번 소송에서 미제출 일일마감표 폐기가 복지부의 제출 명령과 무관하게 이뤄졌다고 증명할 책임은 의사 A씨에게 있다. 그러나 A씨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복지부 처분이 재량권을 벗어났다는 원심 판단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일일마감표 내용은 물론 일부만 제출한 경위를 비춰봤을 때 의사 A씨가 단순히 착오나 부주의로 폐기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전체 조사 대상 기간(14개월분)에 비해 제출한 일일마감표 분량(78일분)이 적고 "제출하지 않은 비율이 상당하다"면서 "제출 명령 위반 행위의 위법성 정도가 가볍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서류제출 명령 위반을 업무정지 처분 대상으로 삼은 것은 요양기관 등이 급여 관계 서류를 제출하지 않는 등 방법으로 요양급여와 의료급여 비용 청구 적정성에 대한 사후 통제와 감독을 회피하려는 시도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B의원에 대한 처분으로 달성하는 공익이 의사 A씨가 입는 불이익에 비해 결코 가볍다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대법원 재판부는 만장일치로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에 환송해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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