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무책임…'의대 증원' 집행정지 기한 넘겨

"의료계, 사법부 신속 결정 촉구에도 대법원 결론 미뤄져"
"대입전형 시행계획 확정 앞둔 정부, 소송 대리인조차 지정 안 해"
"의료계, 촛불집회 예고…강력한 반대 의사 표명

의료계는 30일 내년도 의대 정원이 확정되기 전에 사법부의 신속한 판단을 기대했지만, 결국 그 희망이 무너졌다. 의료계는 전날까지 대법원에 신속한 결정을 촉구했으나, 정부의 소극적 참여로 인해 재판은 결론을 맺지 못했다.



정부가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확정하고 발표할 경우,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집행정지 재항고심은 각하 또는 기각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실상 정부의 계획대로 의대 증원이 추진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이하 전의교협)는 29일 서울대 공대 성원용 명예교수와 경영컨설팅 기업 이노무브의 장효곤 대표가 각각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성 교수는 탄원서에서 "대폭적이고 급격한 의대 증원으로 인해 한국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장기적으로 공공복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의대 증원은 장기적 안목으로 추진할 사안으로, 1년 정도 숙의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장 대표 역시 대법원에 "의대 증원은 잘못된 정책"이라며, "심지어 맞는 정책이라고 해도 일단 멈추고 충분히 논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공공복리에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적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의대 증원은 '일단 멈춤'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의교협은 이에 대해 "비(非) 의료계에서도 의대 증원을 멈춰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며, 이를 높이 평가했다. 앞서 전의교협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각각 대법원에 탄원서와 진정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의료계 측 법률대리인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찬종)는 대법원의 신속한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배경에 정부의 소극적 참여를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 사건을 신속처리사건으로 지정하고 빠른 속도로 심리를 진행하고 있지만, 정부는 소송 대리인도 지정하지 않고, 반박 답변서도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소송 대리인을 선임하고 답변서를 제출하면 대법원이 검토 시간이 필요하므로 이달 31일 예정인 입시요강 발표를 연기하라고 지시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의료계 측은 정부가 앞서 2심 재판부에 제출했던 답변서를 대법원에 참고자료로 대신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이 변호사는 "정부가 도저히 승소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해서 시간 끌기를 선택한 것"이라며, "거짓말, 말 바꾸기, 조작, 은폐가 현 정부를 상징하는 언어들"이라고 힐난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30일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확정하고, 각 대학은 다음날인 31일 2025학년도 수시 모집요강을 공표할 예정이다. 이 경우 대법원은 의대 증원 집행정지에 대해 각하 또는 기각을 결정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는 의대 정원이 확정된 후 집행정지가 결정되면 입시현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집행정지가 기각 또는 각하되더라도 이후 본안 소송을 통해 2026학년도 이후의 증원을 다툴 여지는 있지만, 본안 소송이 통상 2~3년 진행되는 것을 감안할 때 의대 증원은 정부안대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9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31일 각 대학이 수험생과 학부모님들께 모집요강을 안내하면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절차가 모두 마무리된다"고 말했다. 이어 "원점 재검토나 전면 백지화라는 말은 이제 공허하다"며, "의료계는 국민과 환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 대신 왜곡된 의료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의료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고민하셨던 부분을 허심탄회하게 말해달라"고 촉구했다.

내년도 의대 정원 확정 후 의정 갈등은 오히려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는 30일 저녁 전국 각지에서 '대한민국 정부 한국의료 사망선고 촛불집회'를 예고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28일 자신의 SNS에 이를 알리며 "우리들의 분노가 어떤 것인지 정부에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고 각오를 다졌다. 29일에는 "이제 본격적으로 나라가 흔들릴 확실한 행동을 의협이 하겠다"며 의료계 총파업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의대 교수들도 촛불집회에 참여하며 목소리를 한데 모으기로 했다. 방재승 전(前) 서울의대 비대위원장은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촛불집회에 서울의대 비대위 이름으로 참석할 예정이고, 전의교협도 같이 참가하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의료계가 여러 직역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현재의 심정은 모두 다 똑같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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