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 미달도 진급" 의대 가이드라인에 의료계 반발... "교육 질 포기한 정책"

교육부 "F학점도 진급 가능"... 의료계 "부실교육 조장" 강력 비판
원격·야간·주말 수업 권고에 "압축·속성 교육" 우려... "임상실습은 어떻게?"
의협 "저질 의사 양산될 것" 경고... 의대생 96% "국시 거부" 강경 입장

교육부가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을 막기 위해 발표한 '의대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이 의료계와 교육 현장에서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의학교육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이를 '부실교육'을 조장하는 정책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교육부가 10일 발표한 가이드라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의예과(예과) 1학년 학생들이 일부 과목에서 F학점을 받더라도 유급되지 않도록 하고, 해당 과목을 2학기나 상위 학년에서 수강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2. 예과 1학년 수강신청 시 2025학년도 신입생에게 우선권을 부여한다.

3. 의학과(본과) 4학년 대상 임상실습 수업을 2025학년도 계절학기 등으로 보완하고, 의사국가시험(실기) 추가 실시를 검토한다.

4. 원격수업, 계절학기, 야간 및 주말 수업 등을 활용하여 수업을 진행한다.


이러한 방침에 대해 의학교육 전문가들은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 신찬수 이사장은 "의학교육이 형해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이다. 아무리 의사 인력 양성이 급하다고 해도 교육의 기본은 지켜야 한다"며, F학점을 받은 학생을 진급시키는 것은 "교육기관의 기본 사명에 충실하지 못한, 우려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계절학기와 야간·주말 수업, 원격수업을 활용하라는 방침에 대해 신 이사장은 "압축, 속성 수업으로 밀어넣기식으로 강의를 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상실습의 경우 "실습시간이 모자라다고 자는 환자를 깨워서 실습할 수는 없지 않는가. 대혼란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의대 기초의학교실 교수는 교육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게 목적이지 교육을 잘 하겠다는 생각은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개원의를 바로 의대 교수로 고용하는 방안에 대해 "의대 교수를 그냥 진료만 하는 의사로 보는 거다. 가르치고 연구하는 의사로는 생각하지 않으니 개원의를 바로 교수로 채용하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이번 가이드라인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의협은 "교육부가 아예 대놓고 부실교육, 저질교육을 하라고 종용하고 있다"며 "의학교육의 원칙을 훼손하고 땜질식 조치를 열거하며 현 정권의 시녀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의협은 F학점 대신 추후 성적을 보완할 수 있도록 하는 'I(incomplete·미완)학점제' 도입에 대해 "의학교육 질을 포기하겠다는 소리이며 타 학과들과 형평성 문제까지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I학점은 일부 대학에서 천재지변 등이 발생했을 때 제한적으로 적용해 온 제도다.

의협은 "의대 교육 과정은 1년 단위로 진행되는 데다 수업량이 상당하기 때문에 반년 만에 속성 단기과정 날림식으로는 제대로 된 교육이 불가능하다"며 "부실교육 가이드라인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진정한 공익을 위해서라면 지금이라도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요구를 수용해 더 이상의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인 정부 대책들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며 "저질 의학교육으로는 저질 의사만이 양산될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이 가이드라인이 현재의 의료 인력 부족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의대생들의 복귀 의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 가이드라인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가 10일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본과 4학년생의 96%가 2025년도 의사국가시험 응시를 사실상 거부할 의사를 밝혔다. 이는 교육부의 가이드라인이 의대생들의 복귀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가이드라인을 둘러싼 논란은 의학교육의 질과 의사 인력 수급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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