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는 근로자... 정부, 사법관계 개입 못해" 의료법 해석 논란
사직서 제출 즉시 효력 발생... "6월부터 퇴직금 지연이자 청구 가능"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이 사직 사유"... 민법 근거 정부 조치 반박
대한의사협회 이재희 법제이사가 정부의 전공의 대상 업무개시명령이 위헌적이라는 주장을 제기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이사는 최근 의료정책연구원 계간지 '의료정책포럼'에 게재한 '사직 전공의의 법적 지위에 관한 소고'를 통해 정부 행정명령의 법적 문제점을 상세히 분석했다.
이 논란의 배경은 2024년 2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발표 이후 발생한 전공의들의 대규모 사직 사태다. 당시 정부는 전국 221개 수련병원에 전공의에 대한 사직서 수리 일괄 금지 명령을 내렸고, 그 근거로 의료법 제59조 1항(지도와 명령)을 제시했다.
의료법 제59조 1항에 따르면, 정부는 보건의료정책을 위해 필요하거나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재희 이사는 이 조항의 적용에 있어 전공의의 특수한 지위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이사의 핵심 주장은 전공의의 이중적 지위에 대한 것이다. 전공의는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의료법 적용을 받는 의료인이자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수련의로서 정부와의 공법(公法)관계가 인정된다. 그러나 동시에 수련병원과 근로관계를 형성한 근로자로서의 지위도 갖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의 행정명령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이사는 "근로자로서의 지위와 의료인, 수련의로서의 지위는 서로 완전히 지도 원리가 다른 영역"이라며 "보건복지부는 의료인, 수련의로서의 전공의에 대해 갖는 권한을 남용해 근로자로서의 전공의에게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사적자치의 원칙, 직장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이 이사는 정부가 공법 관계상 필요한 명령을 발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제59조 제1항의 규정을 근거로 사법 관계에 개입한 것은 공·사법을 구별하지 못한 오류라고 지적했다. 이는 수련병원과 전공의 간의 '계약 관계'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사는 수련병원과 전공의의 관계가 '계약'인 이상, 양측이 각자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계약을 체결하고 종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양자 간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병원은 엄격한 요건하에서만 전공의를 해임할 수 있는 반면, 전공의는 언제든지 자신이 원할 때 사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이사는 민법 제661조(부득이한 사유와 해지권)를 근거로,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가 전공의가 병원에 남아 근무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 '부득이한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공의는 주당 최대 80시간의 수련(근로) 시간을 당연히 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는 등 다른 어떤 근로자보다 열악한 근무조건을 견디고 있다. 이를 견디려면 전문의가 됐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전망이 나은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이사는 또한 사직서의 효력이 전공의가 제출한 순간부터 발생한다고 보았다. 다만 정부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이 존재했던 상황을 고려할 때, 퇴직금의 지연 이자 등은 2024년 6월부터 청구가 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이 이사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도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직한 전공의에게는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할 수 없다. 수련병원에서의 업무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의미의 사직은 구체적인 개별 환자에 대한 진료 거부 행위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이 이사는 "2024년 사직 전공의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전공의가 수련병원과 맺은 사법관계와 국가와 사이에서 발생하는 공법관계를 혼동해 위헌·위법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한 것"이라며 "명확한 법률 근거 없이 그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위법적 명령을 남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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