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 병원 포함 대다수 수련병원, 무응답 전공의 일괄 사직... 일부 지방병원은 보류
"전공의 충원 vs 복귀 자리 확보" 교수진 의견 대립... 병원장-교수-전공의 3각 갈등
대전협 "법적 대응 준비"... 교수들 "필수의료 몰락 위기" 우려 표명
2024년 7월 18일, 한국 의료계는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가 지정한 전공의 결원 보고 마감일인 7월 17일을 기점으로, 전국의 많은 수련병원에서 복귀 의사를 밝히지 않은 전공의들에 대한 일괄 사직 처리가 진행됐다.
이는 수개월간 지속된 전공의 파업 사태에 대한 정부와 병원의 강경 대응으로, 의료계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특히 '빅5' 병원으로 불리는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주요 대형병원들이 무응답 전공의들에 대한 일괄 사직 처리를 진행했다.
각 병원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을 적용했는데, 예를 들어 서울대병원의 경우 7월 16일 전공의들에게 발송한 '사직 합의서'를 통해 무응답 전공의에 대해 7월 15일자로 사직서 수리 시점을 적용하겠다고 안내했다.
삼성서울병원은 더 세분화된 접근을 취해, 인턴과 전공의 1년차에 대해서는 임용 취소, 전공의 2~4년차는 사직으로 처리하는 등 연차별로 다른 방식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7월 16일을 기준으로 전국 211개 수련병원의 전공의 10,506명 중 1,302명(12.4%)에 대한 사직 처리가 이루어졌다. 이는 전날의 86명(0.8%)에서 하루 만에 급격히 증가한 수치로, 정부의 압박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빅5 병원 소속 전공의 1,922명 중 732명(38.1%)이 16일까지 사직 처리된 것으로 나타나, 대형병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정부 방침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실제로 출근한 전공의는 1,047명(10.0%)으로, 전날에 비해 단 1명만 증가했다는 점은 여전히 대다수의 전공의들이 복귀를 거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모든 병원이 일괄적으로 사직 처리를 진행한 것은 아니다. 일부 지방 병원들은 다른 접근을 택했다. 대구지역의 영남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과 울산지역의 유일한 상급종합병원인 울산대병원 등은 무응답 전공의에 대한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충청지역의 일부 병원들도 사직서 수리를 잠정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공의들이 명확히 사직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도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9월 전공의 모집에서 지원자가 매우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역 병원들이 지원자를 전혀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이들 병원은 9월 전공의 모집에서 충원이 되지 않을 바에야, 현재 소속 전공의들의 향후 복귀 가능성을 열어두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사직 처리를 진행한 병원들 사이에서도 하반기 전공의 모집인원 신청을 두고 내부적 갈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빅5 병원 관계자는 "사직 처리 결과는 보고했지만 하반기 모집인원은 아직 확정이 안 됐다"며 "진료과별 의견을 수렴해 경영진이 논의하고 있다. 병원과 교수들 간 의견이 달라 중간 지점을 찾는 중"이라고 전했다.
수도권의 한 수련병원 교수는 더 구체적인 내부 갈등 상황을 전했다. "진료과장이나 주임 교수들은 모집인원을 확보해서 전공의를 충원하고 싶어 하지만, 일부 교수들은 소속 전공의들이 돌아올 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진료과마다도 충원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외부의 압박과 회유도 심한 상황이라 병원에서 어떻게 최종결정할지 쉽게 짐작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는 병원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이번 일괄 사직 처리 조치에 대해 전공의들의 반발은 매우 거세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7월 17일 대전협 공식 SNS 계정을 통해 이번 조치에 대한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대전협 비대위는 퇴직금 지급 지연, 타 기관 취업 방해 등 전공의들의 노동권을 침해한 병원장에 대해 형사 고발, 민사 소송 등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대전협이 지난 3월 29일 이후 약 3개월 만에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밝힌 것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교수들 역시 일괄 사직 처리 후의 파장을 매우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전국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와 수련병원 교수 대표들은 7월 16일 오후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번 하반기 전공의 모집 과정 '꼼수'를 따르다가 자칫 소속 전공의들을 수련병원에서 더 멀어지게 함으로써 필수의료 몰락으로 이어지는 패착이 될 수 있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인 강희경 교수는 더 나아가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에게 직접 서신을 보내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개인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일괄 사직을 강행한다면 앞으로 우리는 전공의들과의 사제관계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며 "우리가 교육자로 남을 것인지, 저임금 노동의 착취자로 기록될 것인지 결정하는 날이 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 교수는 이번 사태에 대해 더욱 비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이번 조치는 병원에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병원장과 교수, 전공의들이 서로서로 복잡하게 얽혀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황을 정부가 의도한 것이 아닌가 싶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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