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 붕괴 위기에 정부 "본인부담 늘리자"... 전문가들 "근본 해결책 아냐"

의료진 "중증환자 전원 불가 사태 심각"... 정부 대책과 현장 괴리 커
실손보험 가입률 高에 실효성 의문... "경제력 따른 의료 격차 우려"
전문가들 "인력 확충·처우 개선 등 근본적 해결책 필요" 한목소리

최근 수개월간 한국의 지역 응급의료기관들이 중증응급환자를 전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응급의료 붕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경증 환자의 응급실 진료 본인부담률을 높여 응급실 과부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의료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책만으로는 응급의료 체계의 정상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26일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양산부산대병원과 세종충남대병원 등 주요 의료기관에서 중증응급질환에 대한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양산부산대병원에서는 뇌경색 재관류중재술, 안과적 응급 수술, 비외상 복부응급수술, 대동맥응급, 담낭담관질환 등의 수술이 의료진 부재로 불가능한 상태이다. 세종충남대병원 역시 영유아 위장관, 담낭담관질환, 영유아 장중첩·폐색 등의 수술을 할 수 없으며, 신경외과는 평일 18시 이후 야간과 주말에 응급실 내 진료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지역 응급의료기관에서 근무 중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인근에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와 대학병원이 위치해 중증응급환자를 전원했는데, 최근 수개월 전부터는 전원이 거의 불가능하다"라며 심각성을 토로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전원을 받아줄 병원을 찾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어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거나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응급의료 붕괴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일부 병원에서만 발생한 진료 차질로 주장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3일 발표를 통해 "최근 일부 병원들이 부분적인 진료 차질을 빚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이들 병원 중 상당수는 적극적 전담 인력확보 노력과 대체인력 투입으로 진료제한 상태에서 벗어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A씨는 이러한 정부의 주장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전국에 응급실이 408개가 있는데 다 같은 응급실이 아니다"라며, 중증응급환자를 담당하는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와 중등증, 경증 환자를 담당하는 지역 응급의료기관을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응급실 차질이 발생한 곳은 주로 중증응급환자를 치료하는 권역·지역 응급의료센터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응급실 과부화의 원인을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으로 분석하고, 그들의 본인부담률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복지부는 23일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하여, 한국응급환자중증도분류기준(KTAS)에 따른 비응급환자 및 경증응급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 등을 내원한 경우 응급실 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을 90%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이러한 대책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정부의 이번 발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책임을 국민과 의료계에 떠넘긴 것"이라며 비판했다. 특히 실손의료보험 가입률이 높은 현실에서 본인부담률 인상이 응급실 이용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더불어 경증과 중증의 구분 문제, 경제 수준에 따른 의료 격차 발생 우려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이형민 회장은 "경증이어도 돈 많은 사람이 돈을 내고 진료를 받겠다고 하면 어떻게 제한할 것이냐"라며, 이 정책이 결과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응급의료를 편하게 이용하게 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계에서는 응급의료 정상화를 위해 보다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응급실 진료의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업무 특성을 고려한 처우 개선, 의료소송 위험 감소, 수가 현실화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응급실에 경증 환자가 많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나왔던 지적사항"이라면서도, "이번 입법예고로 완벽하게 경증 환자가 줄어들진 않겠지만, 할 수 있는 부분은 추진하고 부족한 부분은 실천할 수 있는 정책과 대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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