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보호 취지에 공감하나 급성기·중독 환자 치료 차질 우려 커
의료진 "국제적 치료 원칙 위배... 정신건강국가책임제 도입해야"
전문가들 "환자 거부·보호자 상주 요구 등 부작용 발생할 수 있어"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의료계에서 확산되고 있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지난달 27일 발의한 이 개정안은 정신병원 내 강박 등 신체적 억압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정신과 의사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김예지 의원은 이 개정안의 취지에 대해 "2019년부터 2022년 사이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정신의료기관 내 격리나 묶는 등 신체적 억압으로 인한 인권침해 사건 관련 결정례가 총 22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한 사람에 대한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들은 이 개정안이 의료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안용민 이사장은 "정신질환 치료 시 약물을 통한 진정, 주변 자극을 감소시키기 위한 격리, 환자 자신과 타인을 해할 위험으로부터 환자와 치료진을 보호하기 위한 일시적인 강박 등은 치료적 목적으로 법과 지침에 의해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불가피한 치료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안 이사장은 특히 중독성 질환의 경우 자발적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비자발적인 치료서비스 제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국제적으로 권고되는 효과성 근거 기반의 치료 원칙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치료를 신체질환의 수술이나 중환자실 치료에 버금가는 고난도 치료라고 비유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의 복잡성에 대해 안 이사장은 "급성기 환자의 자타해 위험으로부터 공공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요구와 비자발 치료에 수반되는 자기결정권과 인권 침해 위험으로부터 환자를 보호하라는 이중의 요구가 따르는 복잡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차원적인 접근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안 이사장은 정신 응급 중환자 치료를 활성화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이 불가피한 강제적 치료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부담을 보호자와 의료기관에 과도하게 지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신건강국가책임제' 도입을 제안했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비자발 입원 결정에 대한 책임은 국가가 지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환자 치료에 전념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일본과 미국의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현실과 대비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신건강의학과의 입원 수가가 신체질환 치료의 30~40% 수준으로 턱없이 낮아 최근 수년 사이 상급종합병원과 대학병원에서 정신과 병상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조현병학회 이정석 법제이사는 해당 개정안이 오히려 환자 치료를 방해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많은 환자들이 폭력적인 문제를 일으켜 병원에 오는데 (병원에 온다고) 바로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른 환자나 치료진 보호를 위해서는 격리나 강박은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법제이사는 또한 "폭력성이 높은 상황에서 격리하거나 신체적 제한을 하지 않으면 초기 안정 시기에 안전하게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치료 현실에서 난동 부리는 환자를 안전하게 제압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법이 통과될 경우 많은 병원에서 위험한 환자들을 받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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