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생명 구하려다 '10억' 배상..."의사들이 더 이상 나서지 않는다"

소아응급환자 수술 후 10억 배상 판결에 의료계 충격
"전문의 아니면 수술 못해"...의사들 응급환자 기피 현상 심화
전문가들 "국가 책임 보상제도 도입 등 제도적 개선 시급" 지적

최근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소아 응급환자의 경우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의료계는 이러한 현상의 근본 원인으로 법원의 판결을 지목하고 있다.


▲ 사진 : 게티이미지

최근 두 살배기 소아경련 환자가 11곳의 응급실로부터 진료를 거부당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사건이 발생했다. 119 신고 접수 후 11분 만에 구급대원이 도착했으나, 인근 6개 병원에 전화로 수용을 요청했음에도 모두 거절당했다. 심지어 직접 찾아간 병원들조차 소아신경과 전문의 부재를 이유로 진료를 거부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국민들은 대형병원조차 응급처치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런 현상이 최근의 법원 판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2023년 10월, 서울고등법원은 소아응급환자를 받아 응급수술을 진행한 병원과 당직의사에게 1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2015년에 발생했다. 생후 5일된 신생아가 '중장 이상회전과 꼬임' 진단을 받고 응급실에 내원했다. 당시 병원은 소아외과 전문의가 휴가 중이었으나, 당직 중이던 외과 교수가 생명의 위험을 고려해 응급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후 신생아는 소생했지만 후유장애가 남았고, 보호자는 병원과 의료진을 상대로 약 15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병원 측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항소심에서는 병원에 10억 원, 수술을 집도한 외과 교수에게 1000만 원의 배상 책임을 물었다.

이 판결은 의료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의사들은 이제 응급 소아환자라 하더라도 '소아세부 전문의'가 없으면 환자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 것이다. 환자를 살리려는 선의의 노력이 오히려 법적 책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하기보다는 환자를 거부하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 되어버렸다.

대한소아외과학회 정연준 회장은 이 판결에 대해 "상당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소아환자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당시 상황에서 응급 수술을 결정한 것이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판결이 계속된다면 병원들이 더욱 보수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정 회장은 소아환자의 경우 소송이 걸리면 성인 환자보다 배상 액수가 훨씬 커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 국가 배상책임제와 같이, 소아환자의 응급 및 중증질환에 대해 국가가 책임지고 보상하는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도 이러한 판결이 의료진들로 하여금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 상황에서조차 수술을 꺼리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가 소아응급환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다리 절단 외상 환자 사망 사건에서도 권역외상센터들이 다리 접합 수술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환자를 거절한 사례를 들며, 생명을 살리는 응급처치는 가능했음에도 후속 책임 문제 때문에 환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현재의 법적 체계가 권역응급의료센터에 중증, 응급환자의 최종치료 책임을 부여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응급처치만 제공하고 최종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회장은 외국의 사례를 들며 병원 간 전원 체계의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외국에서는 병원 간 전원을 119가 담당하고 비용을 받지 않는 반면, 한국에서는 병원 간 전원 비용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응급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적시에 최종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전원체계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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