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고열 환자 귀가시킨 의사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무죄 판결
"갑작스러운 악화 예측 어려웠다"…의료과실 기준 명확히 강조
의료계, 대법원 판결 환영…"의료진 보호 위한 합리적 판단"
고열로 병원을 방문 했다가 급성 장염으로 진단받아 귀가하게 된 환자가 하루 만에 패혈증 쇼크로 사망하게 되면서 환자를 귀가시킨 의사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의료과실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했다.
고열 환자 귀가 후 패혈증 쇼크로 사망…의사 '업무상과실치사'로 기소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대법원은 내과 전문의 A씨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 형사소송을 파기 환송하는 결정을 내렸다. 사건은 지난해 여름, 고열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환자 B씨에 대한 진료 과정에서 발생했다.
B씨는 내과 전문의 A씨에게 일반혈액검사와 간초음파검사 등을 받았고, A씨는 급성 장염으로 진단하고 귀가를 권유했다. 그러나 B씨는 귀가 후 하루 만에 패혈증 쇼크에 의해 다장기부전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검찰은 A씨가 환자의 혈액검사 결과 백혈구 수치가 정상치보다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염증 수치를 나타내는 C-반응성단백질(CRP) 수치를 확인하지 않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A씨를 기소했다.
특히 검찰은 A씨가 급성 감염증을 의심하여 환자를 즉시 입원시키거나 항생제 요법을 시행하지 않은 것이 업무상과실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원심, "급성 감염 의심됐음에도 입원 조치 없이 귀가…의료과실 인정"
원심 재판부는 A씨의 업무상 과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B씨에 대한 일반혈액검사와 일반화학검사 결과, 백혈구 수치가 정상보다 높았고, 따라서 급성 감염증을 의심할 수 있었음에도 A씨가 입원을 시키지 않고 귀가시킨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원심 재판부는 A씨가 B씨에게 혈액 배양 검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수액 요법과 경험적 항생제 요법을 적용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A씨는 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대증적 처치만 한 후 환자를 귀가시켰고, 이러한 조치는 의료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이에 따라 원심은 A씨의 과실을 인정하고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원심 파기 환송…“갑작스러운 악화 예견 어려웠다”
그러나 A씨는 원심의 판결에 불복하여 항고했고,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했다. 대법원은 의료과오 사건에서 의사의 과실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결과의 발생을 예견할 수 있고, 또 회피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 경우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의사의 과실을 판단할 때는 당시의 일반적인 의학 수준과 의료환경, 진료 조건, 의료행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며, “의사가 비록 완전무결한 임상 진단을 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해당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진단 수준의 범위 내에서 의료 윤리, 의학 지식과 경험을 기초로 최선의 주의 의무를 다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A씨의 경우, B씨에게 대증적 처치를 한 것과 CRP 수치를 확인하지 않은 것 등이 의료과실로 인정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환자를 급성 장염으로 진단하고 그에 따른 대증적 조치를 시행한 점이나, CRP 수치 결과가 확인된 이후에도 환자를 입원시키지 않은 것에 의료상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환자가 패혈증 쇼크로 급격하게 악화되어 하루 만에 사망할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의사가 진단 과정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 때 당시의 의료적 환경과 통상의 주의 의무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며, 예기치 않은 결과에 대해 무조건적인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료계, 대법원 판결 환영…“의료진 보호 위한 합리적 판결”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많은 의료인들은 의사가 진료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로 인해 과도한 책임을 지게 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법원이 의료과실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당시 상황에서 의사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조치를 인정한 것은 의료진 보호를 위한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사들도 인간이며, 모든 환자의 모든 변화를 100% 예측할 수는 없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의사들이 지나친 불안 속에서 진료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의료진이 진정으로 환자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법적 판단이 필수적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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